그것이 국민들의 복리를 위한 것이든, 권력의 행사가 됐든 정치는 어떤 행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기원 전 5세기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사상가 노자는 정치를 말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정치’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봤다. 이런 정치 세계에서 백성들은 그저 군주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또 군주는 공을 이루어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한마디로 일부러 궁리하고 계산해 행동하는 것이 전혀 없는 정치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정치’는 권력을 아주 구체적인 힘으로 보는 서구의 관점과는 크게 다르다. 노자의 나라에서는 조작과 강압이 전혀 없으며, 다만 백성들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행동하도록 이끄는 존재 아닌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위의 정치’를 현실적 권력과 구분해 ‘4차원적인 권력’이라고 부르는 동양철학자들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도 10개월이 다 돼 간다. 그동안 대통령이 정국을 이끌어 온 방식을 보면 ‘무위의 정치’ ‘4차원적인 권력’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내용은 노자가 추구했던 이상 정치와는 맞닿아 있는 게 전혀 없다.
박 대통령의 ‘무위의 정치’는 말 그대로 하는 것 별로 없이 정치를 방치하고 있다는 부정적 의미일 뿐이다. 그 결과 ‘정치 실종’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취임 후 10개월이 지나도록 단독 기자회견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급 현안들이 터져 나오는 데도 연설이나 회의 발언 등을 통해 구구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 메시지들을 얼핏얼핏 던져왔을 뿐이다.
국민들, 그리고 반대세력과의 진솔한 대화를 기피하는 속내와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은 그리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은 여당 대표시절에도 ‘무위의 정치’ ‘외마디 정치’를 한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자신이 어떤 지도자인지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검증을 하고 싶어도 검증할만한 행동이나 정책이 아예 없다는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이런 지적 속에서도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 ‘무위의 정치’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일을 잘해서라기보다 일을 별로 하지 않음으로써 지지율을 관리해 왔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열성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어 ‘무위의 정치’를 통한 지지율 관리가 다른 정치인들보다는 용이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스타일은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솔직히 입장을 밝히고 설득하기보다는 침묵과 밀어붙이기를 지속하면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 징후이다. 국민들의 피로감과 짜증이 점차 쌓여가는 분위기다. 또 일부 합리적 보수인사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국정 갈등을 풀어가는 데 중심적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데도 박 대통령은 종종 이것을 마치 남의 일 말하듯 한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사용하는 것인데 전임 이명박 대통령도 이런 화법 때문에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유체이탈 화법에는 ‘4차원적’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린다.
노자가 추구했던 ‘무위의 정치’는 이상론일 뿐 현실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조정하는 ‘유위의 정치’가 요구된다. 다양한 입장과 주장이 충돌하는 정치판과 거리를 둔 채 고고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무책임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정상회담과 패션, 그리고 시장 탐방 등을 통해 만들어 내는 이미지만으로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당장은 마음이 불편하고 지지층의 동요가 있더라도 과감하게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용기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다. 현재의 지지율이 아니라 역사의 평가를 의식한다면 더욱 그렇다.
노자는 ‘무위의 정치’ 다음으로 ‘백성들이 가깝게 여기고 기리는 군주’를 훌륭한 지도자로 꼽았다. 그리고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군주’와 ‘백성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군주’를 최하위에 두었다.
박 대통령이 훗날 좋은 지도자로 자리매김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진흙탕을 외면하려는 정치스타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에게 흙탕물이 튄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이 살아 있다는 징후이니 대승적 지도자라면 결코 스타일 구길 것을 걱정해 이를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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