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특종 보도하면서 현직 대통령의 사임까지 불러 온,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에는 ‘내부 고발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1972년 6월 5명의 괴한이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체포된 사건이다. 당시 두 기자는 이 내부 고발자 정보원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사건 배후에 백악관이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처하자 1974년 사임했다.
이 정보원의 신원은 30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다가 2005년에야 연방 수사국(FBI) 부국장을 지낸 마크 펠트로 밝혀졌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2008년 사망한 그를 ‘영웅’이라고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크 펠트는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선정한 ‘가장 유명한 내부 고발자 10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들 10인 중에는 1971년 베트남 전쟁 1급 기밀 문건인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 타임스에 건넨 당시 국방부 직원 대니얼 엘스버그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이 베트남전 발발에 군사적으로 깊숙이 개입하고 이를 주도한 과정이 수록된 이 문서를 뉴욕 타임스가 폭로하면서 미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됐고 결국 린든 존슨 대통령은 재선 불출마 결정을 내리게 된다.
또 자신이 임원으로 일했던 미국 담배회사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이 담배의 중독성을 강하게 하려고 니코틴 량을 늘린 사실을 폭로한 제프리 위건드,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부정을 고발한 셰론 왓킨스 부사장, 농산물 중개업체의 가격담합 관행을 고발한 임원 마크 휘태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 폭로에 핵심 역할을 한 백악관 직원 린다 트립도 있다. 뉴욕경찰(NYPD)의 부패를 고발한 경관 프랭크 서피코, 핵연료 재처리 공장에서 은폐됐던 방사성 물질 오염 사고를 폭로한 공장 근로자 카렌 실크우드도 있다.
이중 서피코와 실크우드, 휘태커의 폭로를 토대로 각각 ‘형사 서피코’(1973), ‘실크우드’(1983), ‘인포먼트’(2009)란 영화가 만들어졌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영화 ‘올 더 프레지던트 맨’(1976)으로 나왔다.
이들 내부 고발자들은 당시 조직과 사회로부터는 ‘배신자’ ‘누설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의 공공 이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한해 뉴스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인물을 꼽으라면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 및 개인정보 수집 파문을 폭로한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일 것이다. 그는 NSA가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외국인은 물론 미국에서도 미국인을 상대로 전화와 인터넷, 이메일 등을 분석해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수집, 분석했다고 폭로해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러시아에 망명중인 스노든에 대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반역자’냐 ‘영웅’이냐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스노든이 국가 정보를 누설한 반역자로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정보기관의 비리를 폭로한 용감한 ‘영웅’이라고 칭한다.
사실 미국에서는 내부 고발자를 법으로 보호해주고 보상금까지 지급하는 제도가 장착돼 있다. 연방 정부, 나아가 캘리포니아 주정부도 노동법을 통해 조직의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복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기업의 비리나 범죄행위 정보를 제공하는 내부 고발자는 법원 판결이나 합의를 통해 회수한 금액의 10%에서 30%까지를 포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 IRS가 국제 조세포탈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한 전직 은행원에게 무려 1억400만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보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직 미국 정보요원들이 만든 `샘 아담스 협회’는 지난 10월 올해의 ‘샘 아담스 어워드’ 수상자로 스노든을 선정했다. 미국 내부 고발자 보호운동 시민단체인 ‘GAP’의 제슬린 래닥 이사는 “누구보다도 정보기관의 비리를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전·현직 정보기관 종사자들이 스노든에게 자극받아 내부 고발자로 계속 나서고 있다”며 “용기에는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스노든에 대한 평가는 후대 역사의 몫이라고 본다. 그러나 스노든의 폭로를 통해 거대한 정보기관의 통제되지 않은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아가 개인 프라이비시 침해의 부당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점은 분명 스노든 폭로 파문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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