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번 11월 선거에서 당선된 버지니아 주 훼어팩스 카운티 보안관 (Sheriff)의 취임 선서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당선된 스테이시 킨케이드 (Stacey Kincaid) 씨는 훼어팩스 카운티의 제 77대 보안관인데 카운티에서 271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보안관으로 훼어팩스 카운티와 훼어팩스 시의 보안관을 겸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주 헌법에 의해 보안관을 주민들이 선거로 선출한다. 임기는 4년인데 이번에 당선된 킨케이드 씨의 경우 전임자가 임기 중 은퇴를 해 2015년 12월 말까지 2년 남짓의 잔여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다음 선거는 2015년 11월에 열리는데 그 때 재출마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킨케이드 씨는 당내 경선 때 당시 임시로 보안관 대행을 맡고 있는 남성 경쟁자를 거의 2대1 비율의 표차로 물리치고 민주당 후보가 되었다. 그 후 본선에서도 20% 정도의 득표율 차이로 공화당 후보를 이겼다.
서부영화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버지니아 주에서도 보안관은 원래 해당지역에서 치안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막강했었다. 총기가 난무하고 그로 인한 폭력행위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치안을 책임진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주에서도 지역에 따라 아직도 경찰 대신 보안관이 지역 치안문제의 총 책임자로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한인들이 제법 많이 거주하고 있는 라우든 카운티가 바로 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훼어팩스 카운티는 1940년, 그리고 인근 프린스 윌리암 카운티는 1970년부터 카운티 경찰국이 창설되어 보안관이 맡고 있던 기존의 치안업무 중 형사사건 조사와 형법의 집행이 경찰에 이관 되었다. 그래서 현재 보안관의 업무영역은 법원의 치안, 카운티 유치장의 보안, 그리고 민사소송 사건의 법원행정 및 법원서류 송달과 법원명령의 강제 집행으로 축소되었다. 물론 아직도 법적으로는 보안관과 보안관 대리 (deputy sheriff)들이 경찰과 똑같이 경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 그렇게 하는 것을 자제할 뿐이다.
그런데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경찰국이 창설된 이유를 듣고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40년 당시 카운티 보안관이었던 에파 컬비 (Eppa Kirby)씨는 날로 늘어나는 보안관실의 업무를 분산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국 창설을 카운티 수퍼바이저들에게 건의해 자신의 권한을 이관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속성 상 자신의 권력을 자진해서 내어 준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이와 반대로 늘어나는 업무를 위해 추가 예산과 인력 확보를 요구하는 것이 추측 가능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업무 분산 외에 권한이양을 요청한 실제적 이유가 경찰 업무에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정치인이 경찰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 공권력 집행이 자칫하면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경찰국장도 선거로 선출되는 카운티 수퍼바이저들에 의해 임명되니 경찰력이 정치로부터 백 퍼센트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경찰국장 자신은 주민들의 투표로부터 한 발 비켜 있으니 보안관이 받는 만큼의 정치 압력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공정한 형법의 집행, 경찰력 행사가 공정, 민주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때 컬비 보안관의 용단이야말로 크게 치하 받아야 한다.
가끔 고국으로부터 경찰력 집행이 공정하지 않거나 무기력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우울해진다. 그런 만큼 이 지역 경찰들이 상대가 누군지에 상관 없이 법을 집행하는 소식에 상큼한 느낌을 받는다. 국회의원도 교통경찰로부터 교통법규 위반 티켓을 받고, 불법시위로 손에 수갑이 채워지기도 하며, 검사가 음주운전으로 기소되기도 하는 것이다. 국회 내에서 폭력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러한 행위가 그냥 어물쩍 지나갈 수도 없다.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할 때야 비로서 법치 국가이며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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