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 나온 이회창은 자신의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은 보수가 절대 다수였고 김대중에 대한 비토 세력이 분명 존재했다. 선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논공행상이 오갔고 차기 내각 인선까지 진행됐다. 자신과 정치색이 비슷한 김종필도 부패 세력이라고 뿌리치고 같은 당내 경쟁자인 이인제도 품지 못했다.
결국 김종필은 자신이 한때 용공 인사로 탄압하던 김대중 한테로 가 소위 DJP 연합을 탄생시켰고 이인제는 탈당해 독자 출마를 강행했다. 설상가상으로 IMF 사태까지 터져 집권당의 인기는 추락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는 40%대 38%였다.
2002년 대선도 비슷했다. 초반부터 이회창의 압도적 우세였다. 다급해진 노무현은 자신과는 정치색이 전혀 다른 정몽준과 손을 잡았다. 선거 전날 정몽준이 일방적으로 연대를 깨자 이회창 측은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는 48%대 46%으로 또 졌다.
오바마가 정치적 생명을 건 오바마케어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가 추락하면서 정치의 추는 급속히 힐러리 클린턴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금 민주당 내에서 힐러리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2016년 대선에 나오면 당의 지명을 받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돼 있다. 그리고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공화당에는 맞설 상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따놓은 당상’이 바로 힐러리의 최대 약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뻔한 경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아슬아슬한 게임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는 인간 내면 깊숙이 있는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최고의 게임이다.
지난 50년간 미국 정치사를 보면 관록 있는 기성 정치인과 신출내기가 붙었을 때 미국 유권자들은 대부분 신참의 손을 들어줬다. 1960년 닉슨과 케네디 대결이 그랬고 1976년 포드와 카터 대결이 그랬고 1992년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 대결이 그랬다. 1968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현직 부통령인 험프리보다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던 닉슨의 손을 들어줬고 1980년 선거에서는 현직 카터보다 전직 주지사였던 레이건을 택했다. 2000년 선거에서도 역시 현직 부통령인 고어보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는 신인이었던 아들 부시를 선택했다.
대세론이 맞다면 힐러리는 이미 대통령이 돼 있어야 했다. 2008년 초까지만도 힐러리의 민주당 후보 지명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민주당 지명만 따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라크와 카트리나, 금융 위기로 연타를 맞은 공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힐러리가 버락 오바마라는 정치 신인에 발목을 잡혀 지명을 놓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정치평론지의 하나인 ‘뉴 리퍼블릭’은 지난 달 ‘힐러리의 악몽’이라는 기사에서 지금은 힐러리가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2008년처럼 그녀를 꺾을 수 있는 인물이 민주당 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2012년 선거에서 매사추세츠 첫 여성 연방 상원의원이 된 엘리자벳 워런이 그 사람이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는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 첫 흑인 대통령에 이어 첫 여성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컨센서스이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가정 출신으로 웨이트리스를 하며 학교를 다녀 하버드 법대 교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인 워런은 풍부한 학식, 발군의 토론과 연설 실력으로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워런은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 중산층의 몰락, 월가의 횡포 등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민주당 내 ‘골수 민주당’의 정신을 온몸으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힐러리가 골드만 삭스로부터 10만 달러씩 받고 강연을 할 때 워런은 투기 자본의 비리를 질타했다.
최근 뉴욕에서는 워런급 포퓰리스트인 빌 드 블라시오가 당내 유력주자이던 크리스틴 퀸을 꺾고 뉴욕시장이 됐고 월가의 친구인자 오바마의 첫 번째 FRB 의장 후보이던 래리 서머스는 재닛 옐런에 밀렸다. 포퓰리즘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요즘 분위기는 힐러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정치에 ‘따놓은 당상’은 없다. 2016년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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