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사람은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된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던 나는 그래서 밤이 되면 그 많은 밤하늘의 별들을 헤어보며 아버지의 별을 찾곤 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저절로 크리스마스때 산타크로스를 믿지 않게 되는 것처럼, 나도 어느 때부턴가 그 신비스런 이야기를 믿지 않게 되었다.
지난 두어달 사이에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네 사람이 먼저 이 세상을 하직했다. 세 사람은 팔십대고 한명은 아이였다. 그애는 태어날 때부터 언챙이에다 여러가지 선천적인 문제를 갖고 태어난 아이였다. 의사들은 그애가 고작 살아봐야 여섯살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애는 십이년을 살았다.
그애 엄마는 한국계로 여섯살때 우리 큰 시누이네 집으로 입양을 왔다. 너댓살때 부모가 모두 불에 타 죽어서 입양기관을 통해서 우리 시누네 딸이 되었다. 아이는 똑똑하고 예쁘게 생겨서 처음부터 두 내외에게 기쁨이 되었고, 공부도 잘해서 지금은 제법 알아주는 큰 제약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집도 큰 집을 사고, 제법 잘 살고 있던 중 그애가 태어나 그들의 정상적인 삶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어 버렸다.
그애 아빠는 필리핀 계인데 필리핀들은 근친끼리 결혼을 하는 바람에 가끔 이런 비정상적인 애들이 태어난다고 들었다. 십여년 살 동안에 기쁨보다는 슬픔과 괴로움이 더 컸으리라. 우리 인간의 우둔한 머리로는 어느땐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왜 처음부터 이런 온전치 못한 애가 태어나 부모들에게 괴로움만 안겨주고, 또 일찍 불러가시는 걸까. 이땅에 이런 애들이 태어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애 장례식에 참석한 우리 딸은 내내 코를 훌쩍이며 울었다고 한다. 아마 자신의 아이들을 생각하고 더 슬펐으리라. 오히려 그애 엄마는 의젓했다고 전했다.
한분은 팔십 사세까지 사셨는데, 내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였다. 그분은 믿음을 찾아 십팔세에 월남을 하셨다고 한다. 장례식 때 보니 오남매에다가 손주들도 대여섯 두어서 대가족을 이루었고, 그들의 배우자들까지 각자 제몫을 하며 살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분의 믿음이 그 자녀들을 통해 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결혼식은 조촐해도 장례식은 화려한 것이 훨씬 나았다. 한국에서부터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분의 마지막 장례의식이 천국 환송이었다.
언제나 나를 슬프게, 숙연하게 만드는 것은 영상으로 보여주는 고인의 삶의 흔적이다. 한때는 누구나 젊었고 활기 찼고, 여자인 경우엔 예뻤던 날들이 있었다. 폼을 잡고 경치 좋은데서 가족과 함께 환하게 웃는 모습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허무하게 떠나간 영혼이 되어 버렸다. 또 한사람은 내 대학 선배였다. 그녀는 몇년 전부터 주위에서 모두 곧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을 깨고 몇년을 더 버티셨다. 그 비결은 매일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다. 거의 죽었다가 깨어나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 점심을 함께 먹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까 하는 것이 그녀의 매일의 궁리며 일과였다. 아마 그런 열정이 그녀를 몇년 더 살게 만든 비결이 아닐까 하는 것이 동창 모두의 생각이다.
그녀가 삼년 전, 당시 한국에서 살고 있던 나를 동창생 몇명과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고 간 적이 있다. 나는 정성껏 그들을 대접했다. 그때가 사월이었는데 날씨가 꽤 쌀쌀해서 내가 새로 산 코트를 드렸더니 그녀는 그 일에 꽤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세상 떠나기 한달 전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아끼던 옷 몇벌을 주었다.
모두 값이 나가 보이는 그런 옷이었다. 친구 몇명이서 마지막 그녀를 찾아 특별 기도를 해주었는데, 말하자면 그녀의 천국행을 주님께 부탁드리는 그런 예배였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그녀는 몇 달을 더 버텼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이 땅에서 떠나간 영혼이 되었다. 그들 모두가 우리의 바람대로 천국행을 했는지 우리들은 아무도 모른다. 고통 속에 이 세상에 태어나 고통 속에 죽어간 열두살 짜리 아이는 생전 키가 자라지 않아 다섯살 짜리 옷 밖에 입지 못했다. 그애는 분명 지금쯤 하늘에서 천사가 되었으리라.
수 십년전 내가 텍사스에 살 때 삼개월 밖에 안된 아기 장례식에 간 적이 있다. 그 애기는 바로 우리 옆집 아기였는데 갑자기 크립데스를(아기 침대에서 급사한 아기)했다. 그날 신부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가끔 늙은이 뿐 아니라 애기도, 젊은 사람도 필요로 하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 답을 모르지만 약간의 의문은 풀리는 것 같았다.
어제부터 베이 에어리아는 우기가 찾아왔다. 비가 추적추적 하루 종일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끝나면 모든 나뭇잎들을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딩굴 것이다.
글을 끝마치려고 하는데 전화가 한통 따르르 왔다. 큰 아들에게서였다. "엄마!우리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이틀 전에 추운 바깥에 나가셨다가 쓰러지신 후 깨어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셨대요. 믿어지지 않아요..와이프는 내일 한국에 돌아간다고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순박하고 조그만 체구의 안사돈을 마지막 본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 거의 십년은 된 것 같다. 겨우 삼십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막내 아들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겼던 그녀는 결국 이제 아들 곁에 간 것일까? 또 하나의 영혼이 떠나갔다. 슬픈 생각보다 담담한 마음 가운데 한줄기 회오리 바람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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