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운타운 남동쪽에 위치한 벨(Bell)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명도가 거의 없는 도시였다. 지난 2000년에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사용될 수십개의 오스카 동상이 이곳에서 도둑맞은 사건으로 잠시 뉴스를 타기도 했지만, 710번 프리웨이에 접한 2.5평방마일 정도 면적의 변두리 소도시로 인구도 3만5,000여명에 불과한 벨시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다름 아닌 공무원 ‘부패 스캔들’ 때문이었다.
지난 2010년 이 조그만 시정부의 매니저였던 로버트 리조가 연봉을 무려 100만달러 가까이 받는다는 사실이 LA 타임스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그를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과 시의원들이 주민들의 혈세로 조성된 시 공금을 각종 편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배불리기에 사용한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벨시는 미국에서 현대판 공무원 비리 스캔들의 대명사가 됐다.
이 사건이 터져 나온 지가 3년이 지났고 형사 기소된 주범 리조는 이달 초 총 69개의 공금 유용과 독직 등 혐의에 대해 재판을 포기하고 유죄를 인정했지만, 벨시 스캔들의 추악한 이면들은 여전히 양파 껍질 벗겨지듯 불거져 나오고 있다. 리조 밑에서 시 부매니저로 근무하며 공금 남용의 행동대장 격으로 활동한 안젤라 스페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공금 유용 등 13개 혐의로 그녀를 기소한 검찰의 기소 내용과 재판 과정에서 나온 증언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한때 유행하던 한국 뉴스 앵커의 멘트처럼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들이 많다.
스캔들이 불거진 뒤 사임한 벨시의 전 경찰국장의 법정 증언도 그 하나다. 글렌데일 경찰국장을 지낸 그는 경찰관 수가 50명도 채 되지 않는 이 소도시의 치안 책임자 자리로 옮기면서 제안 받은 연봉 액수에 깜짝 놀랐다고 증언했다. 벨시보다 경찰관 수가 200배나 많은 제2의 대도시 LA의 경찰국장이 받는 연봉이 32만달러 수준인데, 당시 스페샤가 그에게 제시한 연봉은 이보다 훨씬 많은 45만달러로 미국 대통령 연봉과 맞먹었던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에 놀라 그렇게 많이 받아도 되느냐고 반문하는 경찰국장에게 스페샤가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검찰에 따르면 스페샤는 이 이메일에서 “당신도 파이를 나눠먹는 거지... 우리처럼!! 함께 살쪄가는 거에요. [리조]가 ‘돼지는 살찌고, 호그(식용 수퇘지)는 잡아먹히지’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우리가 호그만 되지 않는다면 만사 오케이죠!!”라며 스스로를 공금을 닥치는 대로 먹어 살찌는 돼지로 묘사,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벨시 스캔들에서 보는 것처럼, 공직자의 청렴도 기준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미국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이처럼 어이없는 비리와 부패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공금을 다루는 사람들의 엄정한 윤리와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이는 공무원 뿐 아니라 기부금이나 후원금, 회비 등을 다루는 비영리단체나 봉사기관 등에도 물론 해당된다. 최근 재정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표와 이사진이 전원 사퇴하는 내홍을 겪은 파바 사태, 그리고 역시 재정 부실 의혹 등으로 전직 이사장이 불명예 퇴진한 한미동포재단 사태 등도 한인사회에 이같은 교훈과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리조와 스페샤 등 벨시 스캔들의 장본인들은 이제 법의 심판을 받게 되겠지만, 이들로 인한 시정부의 신뢰도 하락은 상당 기간 큰 타격으로 남을 것이다. 벨시 스캔들 이후 LA를 비롯한 여러 지역 정부들이 앞 다퉈 고위 공직자와 공무원들의 급여 현황 등을 조사하고 공개하는 등 법석을 떤 것도 이를 우려한 것이다.
회원들이 1,000여명이나 된다는 대규모 봉사단체 파바의 경우 학생 회원들의 환경보호 운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LA 시정부와 주류사회에도 잘 알려진 단체여서 이번에 제기된 의혹들의 구체적 진위 여부를 떠나 한인사회 외부의 시선이 어떨지도 우려된다. 그동안 열심히 참여해 온 회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의혹의 진상은 명명백백히 밝혀 책임 소재를 가리고 향후 투명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갖춰 앞으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할 여지를 아예 남기지 않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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