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의 시행 혼란이 고조되면서 급기야 지난 주 오바마 대통령이 일종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갖기 하루 전날, 국제보건 리서치기관 커먼헬스펀드의 새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서방 11개 선진국 2만명을 대상으로 한 헬스케어 관련 조사에서 미국은 또 한 번 가장 비싼 의료비를 지불하면서도 가장 불만스런 서비스를 감수하는 나라로 드러났다.
미국의 1인당 연평균 의료비는 8,508달러로 뉴질랜드보다 5,328달러나 더 비쌌다. 그러나 돈 때문에 아파도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는 37%로 4%에 불과한 영국보다 9배나 높았다. 대부분 전국민 의료보험제를 실시 중인 나머지 10개국에 비해 미국민들의 헬스케어 만족도는 현저히 낮았다. 불만이 많았다 : 보험이 있어도 개인부담 의료비가 너무 많고, 의료 빚 감당이 너무 힘에 부치며, 아플 때 치료대기 기간이 너무 길고, 보험사와의 분쟁 및 서류작성이 너무 복잡하며…헬스케어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촉구한 미국의 응답자는 75%에 달했다.
소비자와 기업 뿐 아니라 각 연령층, 계층별 이해가 상충되는 의료개혁 입법화는 가장 타협이 힘든 정치이슈에 속한다. 그래서 양당의 정치가들이 한 세기 가까이 실패해온(한편으론 피해온) 과제이기도 했다.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감당 가능한 의료법(Affordable Care Act)’의 입법화도 언론들이 수차례 ‘부음‘을 썼을 만큼 우여곡절을 거치며 힘겹게 성사되었다.
대다수 국민에게 합리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역사적’ 해결책으로 채택된 오바마케어가 쏟아지는 집중포화에 비틀거리고 있다. 본격시행 한 달만에 ‘총체적 난국’을 드러낸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대해온 공화당 티파티를 탓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행정부의 무능과 대통령 자신의 신중하지 못한 약속 남발이 직접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헬스케어 개혁을 홍보하며 오바마는 반대여론을 잠재우기위해 두 가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새로 가입해야할 무보험자들에겐 이렇게 장담했다. “보험가입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아마존에서 TV를 사듯이 웹사이트에서 보험 플랜을 비교한 후에 선택하면 된다” 기존보험 가입자들도 안심시켰다 - “현재 가진 보험이 좋으면 계속 가질 수 있다”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접속이 거의 불가능한 연방정부 보험가입 웹사이트의 불통사태에 신규가입자들의 불만이 끓어올랐고, 오바마케어 기준에 미달하는 기존보험 개인 가입자들에게 취소통지가 날아들면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이 ‘기존 가입자’ 중 직장과 정부 보험으로 커버되는 95%만 생각했지 나머지 5%의 개인 가입자를 미처 고려하지 않고 가볍게 장담했던 것이다.
결국 책임을 인정한 오바마는 기존보험 취소를 1년 연기시키는 조치로 한발 물러서야했고,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전국의 모든 미디어들이 오바마의 ‘워터게이트’, ‘카트리나’ ‘노예제도’ ‘시한폭탄’ ‘맬프랙티스’ ‘난파선’ 등 온갖 표현을 동원해 오바마케어 때리기에 나섰던 지난주는 오바마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한 주’였다. 그러나 불가항력도 아닌 준비부족과 경솔한 과장 때문이니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한 주가 지나면서 사태는 두 가지 질문으로 정리되고 있다 : 오바마케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회복은 가능할까.
요즘 잇달아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예상을 위한 힌트를 제공한다.
오바마에 대한 여론의 감정은 처음부터 독특했다. 그의 정책엔 반대해도 “정직하고 믿을만한 좋은 사람, 서민을 이해하는 강한 지도자”라는 개인에 대한 지지도는 언제나 과반수를 넘었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호감도와 신뢰도가 40%대로 떨어지면서 자신의 가장 큰 정치자산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오바마의 정치적 입지 회복보다 전망이 밝은 것은 오바마케어의 궁극적 정착이다. 여론의 과반수는 여전히 오바마케어 반대편에 서있지만 오바마케어 폐기를 지지하는 응답은 38%에 머물렀다. 불완전한 법이지만 수정하고 보완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가장 시급한 최우선과제는 기술적 문제 해결이다. 연방 웹사이트가 정상 가동되어 “아마존에서 물건 사듯 쉽게” 보험을 택할 수 있다면 신규가입자들은 물론 급증할 것이고, 기존보험 개인가입자들도 여러 가지 보험을 한 눈에 비교하며 더 좋은 보험을 합리적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순조로운 시행이 계속되면 오바마케어는 미국인들에게 ‘별 불만 없는’ 의료보험제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겨울 오바마가 헬스케어 개혁을 처음 추진했을 때 측근 참모들은 대부분 반대했다고 당시 젊은 참모였던 존 파브로는 전한다. 성공확률 낮고 정착할 때까지는 여론의 반대가 높아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그때 오바마가 물었다 : “왜 우리가 여기 있습니까? 지지율 높이고 즐기려고? 우린 오랫동안 토의해온 문제들을 해결하고 변화를 이루려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닙니까?” - 세월과 업무에 시달려 지쳐있을 오바마가 아직도 그때의 뜨거운 열정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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