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화창한 날, 자동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길을 떠난다. 미지의 시간과 거기 속한 공간으로. 좌석을 뒤로 젖히고 차창으로 밀려드는 햇살을 즐긴다. 창 밖으로 금발처럼 바람에 일렁이는 들풀들과 나무 이파리들 위로 햇빛이 조각조각 깨어져 흩날린다. 한껏 경치에 취해 있는데 요세미티 발치에 다다랐을 때 느닷없는 흉한 몰골에 흠칫 놀라 둘러보니 아아! 120번 가장자리를 따라 드러난 화마의 흔적들! 어느 Vista Point에 서니 산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광대한 지역을 불길이 휩쓸고 지나갔다. 차를 세운 사람들 입에서 한숨과 탄식의 소리가 신음처럼 새어나온다. 얼마나 이 땅이 아팠을까. 목이 메어온다. 불에 타던 그 때, 산이, 나무들이 내질렀을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아직도 타는 냄새가 나는 듯하다. 표지판까지 불길에 일그러져 있다. 참상은 요세미티 입구를 들어서서도 한참을 이어진다. 산중의 주유소 하나가 코앞까지 불길에 그을린 채 겨우 살아남아있다. 그걸 사수하느라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었으리라. 저 많은 주검의 옷을 입은 검은 나무기둥들의 행렬을 어찌하나…
그러나 그 와중에 간간이 살아남은 푸른 색을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안도한다. 머지않아 다시 살아나리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아 거목들 사이 단풍까지 든 작은 나무들이 애처롭다. 그 아름다움이…반은 타서 검은 숯으로 변했는데 반은 붉게 단풍진 눈물겨움…삶이란게 이런 것인가. 고통과 아픔으로 검게 그을린 등을 짊어지고 힘겹게 나아가는 것이 우리들 삶이 아니던가. 아픔으로 짓 무른 북쪽지역을 벗어나 요세미티 동쪽 입구로 나아가며 호수에 앉아 마음을 진정한다. 재가 자리하고 있는 이 산맥 몸뚱아리 한 부분이 뭉턱 타들어간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맑디맑은 물가 잔 물결이 무심하다. 끝없는 벼랑길을 구불거리다 Mono Lake을 지나 요세미티 등허리를 타고 내려가다보니 Bishop은 온통 노랑 천지다. 수없는Aspen 은빛 나무들과 무수히 흔들리는 황금빛 이파리들이 햇빛에 불타 오른다. 온천지에.
멀리 붉은 산에 푸른 그림자가 이불처럼 서서히 덮일 때쯤 타오르던 황금 빛은 수채물감 퍼지듯 뭉개지면서 달 표면을 연상시키는 돌과 사막 덤불나무들로 채워진 황막한 벌판에 스며들듯 온화하게 퍼져나간다. 도심의 가로수들뿐 아니라 산등성이마다 단풍으로 찬란한 이 계절, 시골마을의 쇠락한 집들과 손길을 타지 않은 나무들을 스쳐 지나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무수한 기억들과 함께 알수없는 향수에 젖는다. 오래된 마을에 들러 이리 저리 둘러보는 것은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일. 오래된 것들이 주는 시간에 대한 상념에 젖는다.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사람들이 지어놓은 건물들과 그들의 손때가 묻은 사물들은 무언가 아주 희미하고 가느다란 끈으로 내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빠지게 한다. 푸근하진 않더라도 어딘가 친밀한, 내가 있는 곳이 그 어디라도 내가 거기로부터 있어왔다는 느낌, 그 오래된 것들은 내 과거의 일부로 화하는 것이다.
그 시간의 끈은China Camp, 폐허가 된 마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한다. 무너진 집들과 헛간들, 세상과 더 이상 소통하지 않는 굳게 닫힌 문과 창문들, 함부로 널부러져 있는 자동차의 잔해들과 그래도 살아있는 마당의 초췌하기 그지없는 나무들, 거기 그 사람들의 남루했을 삶에 세월의 비애와 더불어 내 가슴은 눈물 흘린다. 그곳을 벗어나 허기를 달래기위해 들린 작은 공원, 나무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다. 땅 위엔 도토리 나뭇잎들이 수북히 쌓여 양탄자를 이루고 그 위로 느슨히 비끼는 햇살, 머릿결을 살랑이며 스쳐가는 바람과 멀리 새들의 지절거림, 나무 그늘 아래서 누리는 이 느닷없는 평화…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불에 탄 요세미티, 그 옛날 번성했던 쇠락한 마을들, 사람들은 가고 잡초 무성한 폐허, 그리고 우리들은 여전히 아둥바둥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짧은 순간의 평화가 있어 그 모든 것은, 비록 비참하고 남루한 것들조차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삶은.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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