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폐쇄가 시작된 셋째 날, 상원 원목인 배리 블랙목사는 개회기도에서 간구했다 : “이 광기(madness)에서 우리를 구원 하소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면서 합리적인 것처럼 말하는 이 위선에서 우리를 구하소서…”국민의 고통과 국가의 위상을 볼모삼아 불필요한, 무모한 전쟁을 벌여 ‘인위적 위기’를 초래한 ‘광기’의 발원지는 티파티다. 이념적으로 극단적이고 정부와 기성정계를 혐오하며 중도를 경멸하는 공화당 내 강경보수집단이다. 티파티 의원들에게 ‘타협’은 옵션이 아니다. 그들은 합리적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오바마케어 폐기’를 목표로 내세웠고 ‘정부 폐쇄와 국가 디폴트’라는 정치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 싸움을 끌어갔다.
이번 전투는 결국 스스로 상처 입힌 공화당의 패배로 끝났지만 우연히 시작된 즉흥적 반란은 아니었다. 장내외 보수진영이 몇 달간 추진해온 전략모의의 결과였다.
금년 초 워싱턴에 모인 전국 30여 보수단체 대표들은 조용히 하나의 계획서를 채택했다. ‘오바마케어 재원봉쇄 청사진’ - 2010년 입법화 직후부터 시도되어온 오바마케어 폐기작전이 오바마 재선으로 벽에 부딪치자 절박하게 새로운 플랜이 필요해졌던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보수진영이 오랫동안 구사해온 완강한 입법전략을 담았다. 예산 전쟁에서 극우강경파 의원들이 소심한 공화당 지도부와 동료의원들을 압박해 정부 폐쇄까지 불사한다면 오바마케어 폐기가 가능하다는 작전이었다. 정부 폐쇄가 목적은 아니었으나 예상은 충분히 한 것이다.
청사진은 봄부터 가을까지 단계별 행동지침도 제시했다. 최전선에 서게 되어 익사이팅한 상하원의 소장파 의원들,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 억만장자 보수기업가들, 이들의 입과 돈과 성난 풀뿌리 민심까지를 체계적으로 묶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보수단체와 연구소가 총동원된 캠페인이었다. 오바마케어 헐뜯기 광고, 대학 캠퍼스를 순회하는 ‘오바마케어 카드’ 불태우기 퍼포먼스만이 아니었다. 여름 막바지엔 6,000명을 훈련시켜 전국 타운홀 미팅에 선동자로 파견하기도 했다. 오바마케어 죽이기에 소극적인 중도파 공화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보수진영이 강경책을 고수하며 기댄 것은 ‘여론’이었다. 그러나 오바마케어를 반대하는 만큼 정부 폐쇄 등 인질극도 지지할 것이라는 계산은 착오였다. 공화당 지지도는 사상최저로 추락했고, 당내 분열이 내전 수준으로 비화되면서 ‘공화당’ 이미지는 치명상을 입었다. ‘…청사진’에 협박 계획은 담았지만 역풍 대책은 없었던 탓이다. 현 공화당의 숙원인 오바마케어 폐기는커녕 별 흠집도 내지 못한 채 당 리더십 부재만 만천하에 공개했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의 정당 ‘그랜드 올드 파티(GOP)’의 초라한 전락이다.
그러나 정작 광풍을 몰고 온 티파티 진영엔 패전의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공화당 지도부의 묵인하에 정부 폐쇄까지 감행하며 오바마케어를 다시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만약 오바마와 민주당이 지난 3년간의 예산협상에서처럼 타협하고 양보했더라면 티파티는 지금쯤 의기양양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협박하는 인질범들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오바마와 민주당의 단호한 협상거부가 ‘티파티 셧다운’을 해결한 단기적 대책이었다면 장기적으로는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무모한 정치쇼가 이번 위기를 마지막으로 사라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막강한 돈과 조직이 전폭 지원하는 극단주의 의원들의 증가에 따라 국익보다 파벌적 당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보이스가 높아진다면 국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위기는 더욱 잦아질 것이다. 수십년 누적되어 온 양극화의 고질은 쉽게 해결되기엔 너무 복합적이고 너무 광범위하다. 그러나 초당적 정책센터와 공동조사 결과를 분석한 USA투데이는 한두 가지 선거법만 바꾸어도 바람직한 변화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선거구 재조정이다. 15년 전만해도 양당후보가 치열한 본선을 치르는 연방하원 의석은 최소 164석에 달했다. 지금은 기껏해야 90석도 채 안 된다. 현직 정치가들이 각 당에 유리하도록 보수·진보로 꼬불꼬불 선을 그어가면서 선거구를 재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을 ‘자행’한 탓이다. 이념이 선명한 후보라야 당 경선에서 승리하고 경선에서만 이기면 당선이 보장되는 탓이다. 초당적 위원회가 선거구 재조정을 담당한다면 게리맨더링은 사라지고 통합된 선거구에서 합리적 후보가 선출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것이다.
둘째, 당 경선에서 무소속 유권자의 투표를 허용하는 것이다. 여론의 67%가 지지를 보내는 제안이 실현된다면 중도파 후보의 입지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월스트릿저널이 어제 이번 예산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가려냈다. 10점 만점에 가장 높은 8점을 받은 승자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대표였다. 그러나 가장 낮은 1점에 그친 패자는 ‘아메리카’였다.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으나 아무도 환호하지 않는 이유다. 과격파의 득세를 막을 근본 대책은 요원한데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여전히 외쳐대는 티파티의 반란이 언제 또 폭발할지…워싱턴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이 광기에서 우리를 구원 하소서” - 블랙목사의 기도는 내년에도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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