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인들은 보통 사람들을 만날 때 인사말로 ‘알로하!’라고 말한다. 그 뜻은 ‘안녕하세요?’아니면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샬롬, 굿바이’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부드럽고 상냥하다. 마치 그곳 바닷가에 부는 바람이 유난히 부드럽고 향기롭듯이 말이다.
이번이 세번째 쿠와이를 방문했는데, 지난해 9월과 달리 10월이 훨씬 더 덜 덥고 날씨가 좋았다. 매일처럼 비가 왔지만 비는 잠깐 오고 금방 날씨가 개여서 보드랍고 신선한 바람이 살갖에 스칠 때마다 그 보드라운 감촉이 그렇게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없었다.
쿠와이는 내 친구 메리네의 별장이 있어서 친구 덕에 매년 호강을 하는 셈이다. 올해는 막내 아들 내외도 초청을 받아서 더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여행을 같이 해보면 보통 때는 잘 모르던 사람들의 성격이 다 들어나게 마련인데, 우리가 매년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물론 이 아름다운 섬이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메리와 그녀의 남편인 스탠리가 늘 우리들을 편하게 대해주어서 마치 내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메리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착하고 심중이 깊고, 남을 배려해 주는 유일한 미국인 친구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속 깊은 얘기도 모두 나눌 수 있는 사이다. 그녀는 어떤 오해로 지금까지 십여년째 만날 수 없는 외아들을 얘기할 때마다 그 푸른 눈에 늘 눈물이 글썽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들은 아침마다 하날레이 베이를 찾아가 보드라운 비치의 모래 바닥을 맨발로 걸었다. 멀리 보이는 푸르고 우람한 산을 바라보며 이른 아침이라 아직은 적적한 바닷가를 거닐면, 파도가 밀려와 발자욱을 지운다. 그러면 우리들은 또 발자욱을 만들며 걸어가고 파도는 어김없이 또 발자욱을 지우곤 한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 어딘가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또 어딘가에선 어떤 생명들이 떠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어제 조카 딸이 전화를 해서 두 사람의 부음을 알려 주었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직접적으로는 몰라도 한분은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웃 사람의 형이고, 또 한 사람은 한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인데 조카의 시집쪽 친척이다. 두 사람 모두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삶은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사람들이 오늘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가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삶은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사실 늙어가면서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순간순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래서 더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며칠전에 <퀸 베스>라는 곳을 찾아갔다. 정글처럼 울창한 삼림 속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는데 언덕길이어서 바닷가로 약 이십분을 걸려서 내려가는데 꼬불꼬불한 산길이 위태하게 이어지고, 탁 트인 바다가 보이면서 울퉁불퉁한 암석이 끝없이 펼쳐졌다. 끝까지 내려가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풀장 같은 큰 목욕탕 같은 것이 있어서 감탄을 자아 내게 했다.
옛날에 어느 여왕이 이곳에 와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이곳 이름이 <퀸 베스>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마침 가랑비가 그치자 아름다운 무지개가 선명히 바다 위에 걸려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아들 내외는 그곳에 들어가서 수영을 했다. 파도가 치자 높은 바위 위에 서 있던 사람이 그 파도의 위력에 넘어졌다. 이렇듯 시도 때도 없이 큰 파도가 밀려오면 순식간에 먼 바다로 밀려가기도 하고, 큰 바위에 머리가 다쳐 큰 부상이나 사망까지도 일어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위력은 무섭기도 하다.
하날레이 비치는 몇마일이나 되는지 몰라도 모래 사장이 부드럽고 한쪽은 강이 이어져 있어서 파워보트도 타고 그곳에서 조금만 가면 스노콜링도 할 수 있고 바다 낚시도 할 수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또 노을이 지는 저녁녘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오렌지 색깔과 붉은 빛과 보라색과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그 색채가 너무 멋져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온다.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세인트 릿지>라는 호텔의 베란다에서 보는 경치는 정말 감탄을 자아낸다.
그 탁 트인 바닷가와 모래사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잠깐 옛날로 돌아갔다. 내가 열세살이던 육이오 전쟁 무렵, 우리 식구들은 공산군을 피해 멀리 완도라는 섬으로 배를 타고 피난을 갔다. 그때는 오직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다리를 놓아서 목포에서 완도까지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그때 생전 처음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육개월간 나는 정말 엄마가 그리워 먼 바다를 바라보며 늘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지 오십년도 더 넘은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기에 또 다른 활력소를 준다. 내일이면 다시 집으로 가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익숙하고 편한 것이어서 좋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내집! 그 집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알로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대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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