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가 답답하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에서 정치에 대한 실망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자주 만난다. 비단 정치인이 유머의 소재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처럼 드러나게 정치인이 사회적 불신이나 비난 혹은 풍자의 대상이 되던 적도 별로 없는 듯하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실종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정치가 그 본연의 자리 곧 정치의 ‘텔로스’(telos)를 망각한 데서 오는 게 아닌가 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 정치의 목적 곧 정치의 ‘텔로스’를 구현하기 위한 모습 보다는 일방적 자기 주장이나, 타협 없는 정치적 대결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진상규명을 둘러 싼 여야 정치적 대결이나 박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공약 축소에 대한 도덕적 정책적 논란이 그렇다. 미국 역시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의무가입제) 시행과 정부 예산안 그리고 국가 채무상한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보여 일시적 정부폐쇄(shutdown)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 정부 채무불이행(default)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의 실종이다. 부연하자면 정치 ‘텔로스’의 실종이다. 텔로스 없는 정치의 천박하고 탐욕적인 모습이다. 사실 ‘정치’ 그 자체는 결코 멀리하거나 외면할 개념이 아니다. 정치는 인간의 사회 활동의 산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의 어원을 보아도 그렇다. 영어의 정치(politics)는 도시 혹은 국가를 의미하는 그리스의 폴리스(polis)에서 나온 것으로 한국말로 ‘국가에 관한 일’ 혹은 ‘나랏일’(國事)을 의미한다. 한자어 정치(政治) 역시 고대봉건시대에 나온 용어로 큰 틀에서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일’을 의미하였다. 결국 정치의 개념은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모두 ‘나라에 관한 혹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국가를 이루고 산다면 ‘정치’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시민 혹은 국민으로 산다면 결코 ‘정치’를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치가 혼탁해 질수록 오히려 정치에 대한 냉소나 양비론이나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몸이 아플수록 자신의 몸에 더 각별히 마음을 써야 하는 이치와 같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은 정치의 본질 곧 정치의 텔로스를 기억하고, 정치인들이 이에 입각하여 정치를 해 나가는지 주권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시민이 기억해야 할 정치의 ‘텔로스’로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민생’(民生)일 것이다. ‘민생’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말도 없을 것이다. 민본주의(民本主義)를 표방한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은 민생이 정치의 최고 가치로 여겨져 왔다. 군주나 신하 모두 정치란 ‘민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국가나 사회도 민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남겼던 불후의 명언인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역시 정치는 ‘민생’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하나는 ‘좋은 삶’일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의식주 차원의 민생은 물론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높이고 시민의 미덕을 갖추게 하고 공동선을 향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일이야말로 숭고한 일이며 정치의 텔로스라고 보았다. 끝으로 ‘바르게 함’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노나라의 실권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정자(政者)는 정야(正也)’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는 정치란 곧 ‘바르게(正)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사회의 비리, 불법, 부정부패, 차별, 모순, 불합리, 비효율 등등 세상의 잘못 된 것을 바르게 해 나가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시민의 삶을 외면한 채 구호로만 외치는 민생, 무한 대결로 치닫는 정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 새로운 사회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정치는 좋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의 텔로스가 구현되는 정치, 그런 정치를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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