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수많은 왕 중 왕 노릇을 제일 오래 해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짐이 곧 국가”라고 외쳤던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정답이다. 5살 때 아버지가 죽어 왕위에 오른 그는 77살에 죽을 때까지 주구장창 72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보위에 앉아 있었다. 이보다 오래 왕의 자리를 지킨 사람은 79년간 왕좌에 앉아 있던 고구려 장수왕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루이 14세가 이렇게 오래 왕 자리를 지키는 사이 장수왕처럼 그의 아들도 죽고, 그 아들의 아들도 죽고, 그 아들의 아들의 큰 아들까지 죽어 그가 임종할 당시 왕위 계승자라고는 둘째 증손자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가 바로 루이 15세다.
이렇게 오랜 세월 권좌에 있는 동안 루이 14세가 한 일은 많다. 30년 동안 계속되며 유럽을 황폐하게 만든 ‘30년 전쟁’을 종식시키고 유럽에 평화를 가져왔고 국내적으로는 왕권 강화에 반대하는 귀족들의 난인 ‘프롱드의 난’을 진압했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후원했고 세계 최고의 궁전 베르사유도 지었다. 아메리카에 탐험대를 파견해 미시시피 강을 발견했으며 강 주변 광대한 지역을 ‘루이지애나’라고 부르면서 프랑스 영토로 삼았다. 그가 속한 부르봉 왕조를 경멸했던 나폴레옹도 그를 “가장 위대한 프랑스 왕이자 유일한 왕다운 왕”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가지 결정적 잘못을 저질렀다. 숱한 정복 전쟁으로 나라의 빚을 산처럼 늘려놓은 것이다. 그도 죽음이 임박하자 잘못을 뉘우치고 증손자를 불러 “나는 개인의 영광을 위해 불필요한 전쟁을 벌였다. 너는 그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증손자 루이 15세나 역시 아들이 먼저 죽는 바람에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루이 16세나 늘어나는 나라 빚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루이 16세가 이를 해결해보겠다고 삼부회를 소집했다 오히려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켜 자신과 아내 앙트와네트는 참수되고 자식은 학대받다 요절하고 말았다.
프랑스 혁명의 근본 원인은 과도한 부채와 이로 인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데 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세계를 뒤흔든 양대 혁명으로 꼽히는 러시아 혁명도 마찬가지다. 멋모르고 1차 대전에 뛰어들었다 재정이 파탄 난 상태에서 볼셰비키들이 “빵과 평화”를 들고 나오자 국민들은 이에 호응해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것이다.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이제 전쟁으로 재정이 파탄 나 망하는 나라는 거의 사라졌다. 국민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던 왕조와는 달리 유권자의 생명이 걸린 전쟁을 함부로 하는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선심 복지 공약을 남발해 국가 재정이 엉망이 되는 경우는 자주 발생한다. 얼마 전 있었던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의 재정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오는 17일이면 국가 채무 한도에 다다른다. 공화 민주 양당 간에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진짜 심각한 것은 이미 17조 달러에 달하며 매일 18억 달러씩 늘고 있는 국가 부채다. 1929년 대공황 이전까지 GDP 대비 국채는 15%가 채 안 됐다. 그러다 대공황과 2차 대전이 터지면서 대대적인 적자 예산이 편성됐고 그 결과 국채 비율은 GDP의 120%까지 치솟았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그 후 40년 가까이 계속 줄어 카터 말년에는 30%까지 떨어졌던 것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제 다시 100%에 육박한 것이다.
현재 미국 재정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소셜 시큐리티 등 소위 사회 복지 비용이다. 이 예산의 대부분은 고령자에게 지급되는데 평균 수명이 계속 늘면서 이로 인한 지출도 끝이 보이지 않게 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의 재정 파탄은 불가피하다.
공화당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타협안을 국채 상한 승인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오바마는 이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옳다. 미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국채 시한폭탄의 태엽이 지금도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데 이를 외면한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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