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분명하다.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한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열띤 논쟁의 와중에서‘객관적 사실’과‘역사의 진실’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 해석의 정치성을 부정하는 그 ‘숨김’의 정치학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식민주의의 과거를 정당화하는 일본의 극우적인 역사가 및 시민 활동가들이‘역사사실위원회’의 명패아래 활동한다고 해서 그들의‘사실’이‘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과학적 역사’를 자랑했던 구 소련의 역사서술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당시 고르바초프 당서기가 모든 학교의 역사 시험을 일체 중지시키자 거짓의 맨얼굴을 드러냈다.
정치적 행위로서의 역사 쓰기를 강조하면서, 정치로부터 역사를 구출하자는 제안은 부적절하고 모순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서 국사의‘수능 필수과목화’를 공론화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서로 다른 국사 교과서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면서 역사가 희화화되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이 제안은 불가피하다.
역사 쓰기가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국가 권력과 정치인들이 역사 해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왜 새누리당은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고 거꾸로 민주당은 비판하는가”를 이해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던져 마땅한 역사적 질문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누가’‘왜’‘지금’‘이것’을‘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역사 논쟁은‘누가 옳으냐’ 하는 19세기적 역사학의 질문으로 환원되곤 한다.
금성사든 교학사든, 옹호하는 측이든 비판하는 측이든 모두 자신의 역사만이‘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파 진영에 금성사 교과서가‘스탈린식의 사실 왜곡과 날조 수법’을 좇아‘사료의 고의적 은폐나 편향된 해석’에 치우친 역사라면, 좌파에게 교학사 교과서는‘시험문제 답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저품질’이자‘왜곡과 편향, 전도된 가치관’으로 가득 채워진 교과서이다.
우파와 좌파의 교과서 비판을 종합하면, 한국 사회의 학생들은 모두 사실 왜곡과 날조의 저품질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 왜곡되고 날조된 사실을 정확하게 외우기 위해 수능 시험까지 치르자니 점입가경이다. 사지선다형의 정답을 강요하는 이상 역사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사유방식이 아니라 자기 정파의 사실을 강요하는 폭력이 된다.
그러나 역사의 객관적 사실과 정답을 강변하면서도 좌파든 우파든 끝까지 자신의‘진실’을 감추지는 못한다. 좌파에게 교학사 판이‘청소년의 민족관·국가관을 위협하는’‘반민족적 역사관’의 교과서라면, 우파에게 금성사판은‘우리 현대사가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한 역사였다고 믿는 새 세대를 양산하여’ 기억공동체를 파괴하는 교과서이다.
양 진영의 성명서들을 잘 읽어 보면, 이들에게 궁극적인 문제는 교학사 교과서의‘친일 미화/독재 찬양’의 비뚤어진‘반민족적 역사관’이거나 금성사 교과서의‘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좌파전체주의 세력의 음모’인 것이다. 결국 문제는‘사실’을 넘어서 역사서술의 정치적 행위성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진영에 따라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과거 해석에 대한 교착 상태를 돌파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정치적 입장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 입장에 서서 내재적으로 역사적 논리가 타당한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정치로부터 역사를 구출하는 것은 역사의 정치성을 인정하면서부터이다.
예컨대‘우파’가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거짓말이라고 일축하는 대신 민중사의 관점에서‘일제’에 투쟁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를 사유화한 가산독재체제가 정당화되는가를 묻는다면,‘좌파’는 박정희의 만주군 경력을 근거로 친일파라 매도할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개발독재, 근대화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에 대한 성찰적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다.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최연소 특무상사였지만 2차대전 시기 항독 빨치산 운동과 전후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을 주도한 유고슬라비아의 박정희이자 김일성이었던 티토가 한국 역사학계에서 받을 대접이 문득 궁금하다.
<한양대 사학과 교수,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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