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10여명이 무차별 살해당하는 총기난사가 미국에선 더 이상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다. 유사한 패턴으로 몇 달에 한 번씩 발생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비극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는 해도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은 외면하는 나라, 정신질환자의 총기구입 차단 입법화조차 못하는 나라의 불행한 일상이다.
16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연방의사당과 백악관도 그리 멀지 않은 해군 복합단지 ‘네이비 야드’에서 또 다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정신질환자가 마구잡이로 쏘아댄 총에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이었던 12명의 삶과 그들의 평화롭던 가정이 참혹하게 꺾이며 정지당하는 순간이었다.
컬럼바인과 버지니아텍, 오로라 극장과 샌디훅 초등학교는 미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기억 속에도 생생한 이름이다. 거기에 ‘네이비 야드’ 또 하나의 리스트가 추가된 날, 워싱턴포스트가 세계 각국의 반응을 보도했다. 영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레바논에서도 대표반응은 ‘충격’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참사에 대한 우려와 유감이었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 정부에 대한 ‘이해불가’였다. 러시아의 한 정치가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예외주의를 확실하게 재확인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지난 몇 년 총기난사 발생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총기규제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다. 얼마쯤은 찬반논쟁도 재연될 것이다. 그러나 규제 입법화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워싱턴포스트엔 “총기규제, 여기 잠들다”란 제목의 ‘부음’ 칼럼까지 실렸다.
총기규제강화 지지자들은 지난해 말 어린 초등학생 20명이 선생님들과 교실에서 떼죽음을 당한 샌디훅 참사가 초강력 계기가 되어 미국에서도 드디어 총기에 대한 합리적 제재가 가해질 것으로 자신했었다. 오산이었다.
물론 샌디훅 참사는 ‘무감각한’ 미국에도 끔찍한 충격이어서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고 콜로라도, 뉴욕, 그리고 샌디훅 초등학교가 위치한 코네티컷 등의 주의회에선 규제강화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총기로비에 주눅 들린 연방의회는 한심했다. 공격용 무기나 대용량 탄창 금지는 다 빼버린 채 범죄자나 정신질환자는 어디에서도 총을 사지 못하도록 신원조회를 확대하자는 내용으로 대폭 약화된 법안조차 금년 4월 상원에서 무산시켜 버렸다. 규제 바람이 주춤하면서 인디애나, 캔자스,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한 공화당 우세 20여개 주에선 오히려 총기권리를 강화하며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폭탄’이 떨어졌다. 총기권 주창자들이 2명의 콜로라도 주의원들을 쫓아내는 소환투표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두 상원의원들의 ‘죄목’은 간단했다 : 지난 3월 통과된 총기규제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감히!투표유권자 5만여 명에 불과했던 소규모 소환투표는 총기권 옹호세력과 규제지지 세력이 맞선 일종의 대리전쟁이었다. 총기논쟁의 미래에 대한 전국적인 주민투표로 확대 해석되었던 선거에서 민주당 장악 주의회와 우세한 지지여론에도 불구하고 규제지지 쪽이 패배한 것이다.
콜로라도 소환투표에서 승리한 총기로비는 재선을 앞둔 의원들에게 노골적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두려워하라” 그들의 집단적 파워가 겁나는 의원들은 연방이건 주이건, 공화당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총기규제법은 논의조차 피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한 두 개의 규제법안이, 그것도 잔뜩 약화된 법안이 총기폭력을 확실하게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총기규제 없이는 해결의 실마리도 잡기 힘들다. 그러므로 속수무책 덮어버리는 것은 USA투데이의 지적대로 “총기난사 자체보다 더 몰지각한” 처사다.
우선 왜 ‘합리적인 규제’가 ‘극단적인 권리주장’에 번번이 밀리는 것인가, 그 패인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될 수 있다. 블룸버그 뉴스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총기권을 사수하려는 신념 강한 총기소유주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풀뿌리 지지기반이 규제지지 그룹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극적 소수와 소극적 다수가 겨루면 승리는 적극적 소수의 것이다. 총기소유주들의 뿌리 깊은 열성과 총기제조업자들의 돈이 합쳐지면서 전국총기협회(NRA)의 막강파워가 발휘되는 것이다.
둘째, 총기와 공공안전의 상관관계에 대한 포괄적 연구가 별로 없어 중도 유권자를 설득할 데이터가 부족하다. ‘자기방어’라는 기본권을 내세우는 총기그룹의 강력한 주장에 맞설 대의명분, ‘공공안전’을 뒷받침해줄 심층적 연구결과가 필요하다.
총기규제 진영에겐 패인분석을 근거로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이 숙제를 푼다 해도 총기안전 입법화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탕, 탕, 탕…수개월 전 전국을 뒤흔들었던 총소리가 이번 주 또 울렸다. 탕, 탕, 탕…머지않아 또 울릴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수많은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꿋꿋하게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라며 더 많은 총기를, 더욱 꽉 움켜쥐려는 미국의 총기집착증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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