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딸 한명과 세 아들이 있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들도 그 성격이 다른데 하물며 한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해도 그 생김새며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릴 때는 한 집에서 한솟밥을 먹고 자랐지만 장성해서 각기 가정을 가지고, 또 모두 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다보니 이제는 그 사는 스타일이나 모습들이 확연히 디르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된다.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추세가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변하고 있다. 한국에 김정운이라는 젊고 발랄한 교수가 있는데 그가 몇년 전 이렇게 말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뛰는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고 말했다. 이젠 그 말이 바뀌어져서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놀면서 할 것 다 하는 놈한테는 견딜 재간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바뀌어져서 이젠 죽어라고 일만 하는 놈은 바보고, 슬슬 일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사는 놈이 잘난 놈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그 한계가 있는데 재미 없고 취미에도 안맞는 일을 하다보면 능률이 나지 않을 것은 뻔 한 노릇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카테고리 안에 걸려 들어서 일생을 시시하게 살다가 죽는다. 마치 개미 채바퀴 돌듯 말이다.
얼마 전에 우리 식구들이 거의 다 모인 자리에서 큰 애가 둘째에게 크게 화가 나서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너는 너 사는 스타일이 있고 나는 나 사는 스타일이 있는데 괜히 나서서 잘난척 하지마."보통 때는 왠만하면 웃으면서 넘어가는 것이 그애 스타일인데 모두 다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큰 애는 얼굴이 벌개졌고 둘째는 찍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날 큰 애가 새로 뽑은 근사한 렉서스를 가져와 우리 모두에게 선을 보였는데, 그 차를 현찰로 일시불을 주고 샀다고 자랑 비슷이 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보통 때 가끔 잘난 척을 하는 둘째가 그 말을 듣고 왜 형은 수만불의 돈이 있으면 투자를 하지, 바보처럼 차를 일시불로 사는냐고 비아냥 대니까 그만 폭발을 한 것이다.
사실 오랜 세월 동안 큰 애는 둘째에게 많이 참아왔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 비해 공부도 잘하고 늘 모범생이었던 동생에게 치였고, 미국에 와서도 일류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던 동생에게 밀리고, 자신은 직업을 전전해 현재까지 오랜 세월을 방황했던 애였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적성에 맞고 수입도 짭짤한 집업을 갖기까지 그 자신 뿐 아니라 우리 며느리도 또 두 아들까지도 모두 고생을 했다. 벌써 수십년 전, 내가 운전하던 차를 탔던 큰 손주애가 갑자기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우린 아마 푸어인가봐!”라고.
그날 그 말을 들으면서 내 가슴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대여섯살 밖에 먹지 않은 손주애를 뭐라고 위로해 주어야할지 난감했다. 그게 벌써 20년전 일이다.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바뀌어서 은퇴를 해도 우리 큰 애만 연금을 탈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애들은 모두 잘나가고 있지만 늙어서 연금을 타는 애는 큰 애뿐이다.
"엄마! 아침마다 큰 트럭을 타고 아무도 눈치보거나 감시하는 사람 없는 곳에서 혼자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자유스럽고 행복할수 없어요" 큰애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마 그날 큰 애가 화를 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직업 때문에 이모 손에 자란 아이들이 큰애는 자신보다 이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동생에게 늘 밀려 있었고 가끔 야뇨증이 있었던 터라 혼자 웃목에서 자며 좀 외로웠을 것이다. 그들이 미국에 왔을 때 "그냥 푹 자. 자다가 실수해도 괜찮아. 집엔 세탁기가 있으니까."하며 내가 큰 애의 기를 살려주자 거짓말처럼 야뇨증은 사라지고 말았다.
막내 아들은 어릴 때부터 온식구들의 사랑을 혼자 받으며 자라서인지 성격이 부드럽고 자상하며 친절하다. 그 애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가 있는데, 그 애만큼 자신의 시간을 사랑하는 애도 없을 것이다. 돈 때문에 금쪽 같은 시간을 뺏기면서 안달복달하며 살기가 싫다는 것이 그애 지론이다. 그애는 정말 느긋하게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산다.
막내 부부는 소문난 잉꼬 부부인데 모든 집안일을 함께 한다. 한국에서 살땐 손에 흙을 묻혀 보지도 않은 며느리가 장갑을 끼고 정원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볼 땐 대견하기도 하고 슬그머니 웃음도 나온다. 큰 풀장이 있고 아름다운 꽃들과 큰 참나무가 있는 정원을 보고 한국에서 방문했던 사돈 내외가 아주 만족해했다. 바깥 사돈은 풀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흐뭇해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일인지 우리는 아무도 정의하기 힘들다. 무엇을 하며 살던지 자신이 행복하면 그게 성공이다. 이 풍요로운 땅에서 우리 아이들이 모두 여유롭게 그야말로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 되었으면 하는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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