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론 (Farallone)섬은 샌프란시스코 서쪽 약 30마일 떨어진 바위섬이다. 태평양을 건너온 선박들이 항구의 품으로 들어오기 직전 만나는 고도(孤島). 금문교의 파수꾼이자 바닷새와 물개들의 왕국이다.
독도의 2배 남짓한 120에이커 크기의 무인도지만 북미에선 알래스카 다음가는 조류 서식처다. 이 섬에 25만 바닷새 가족들이 부리를 맞대고 산다. 갈매기와 코모란을 위시해, 바다오리(murre), 갈색 펠리컨, 바다쇠오리, 섬새(puffins)등 12종 조류들이 바위틈과 벽에 둥지를 틀고 산다. 멸종위기에 놓인 코끼리 물개와 바다사자들도 군집을 이루고 있다. 이 섬에 들려면 미 연방 야생 자원국(USFWS)의 상륙 허가를 받아야한다. 새 왕국의 비자인 셈이다.
아침 8시. 버클리 부둣가. 아직도 샌프란시스코만은 여름 안개가 자욱하다. 몇 달 전부터 오도반 소사이어티 생태 관찰반에 명단을 올리고 허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상륙은 불허되고 섬 주위만 돌아보라는 연락이 왔다. 우리 일행은 방한복에 구명조끼를 입고 43피트 급 전세배에 탔다. 배 이름은 흥미롭게도 조나단 리빙스턴. 리처드 바흐의 소설에 나오는 불굴의 갈매기 이름이다.
금문교를 나서자 바람이 드세고 파고가 높다. 작은 북섬과 제법 큰 남섬으로 나뉜 파라론의 윤곽이 점점 드러난다. 9천만년 전, 바다 밑 화강암이 솟아 생긴 이 섬은 오늘도 거센 강풍과 파도에 할퀴고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폐한 섬. 그러나 남섬 꼭대기엔 등대가 서있고 아래쪽엔 생태연구 방갈로 두어 채가 눈에 띈다. 돌 틈마다 마치 피난수용소같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60세쯤 보이는 선장의 해풍에 거슬린 얼굴이 친근해 보인다. 그는 연어잡이 배를 몰며 북가주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파라론섬의 역사를 궤뚫고 있었다. "이 보잘것 없는 무인도가 지난 200년간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1800년 초엔, 모피 사냥꾼들이 들어와 물개와 바다사자, 12만 마리나 전멸시켰습니다. 코끼리 물개는 거의 멸종위기까지 갔는데 지금도 회복이 안됐지요".
그는 인간들의 치사한 “새알 전쟁”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까지 붉히며 목소리를 높힌다. “1849년 골드러시 무렵 샌프란시스코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그 때 주위에 닭 농장이 없었어요. 아침 식사 달걀 수요가 급등하자 투기꾼들은 파라론 섬에 침입, 새알을 걷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파라론 새알회사란 걸 차려 한해 60만 개를 수거해갔다고 한다. 1900년 초까지 무려 1400만 개의 알을 걷어갔다는 것이다. 섬새들이 격감해도 아랑곳 없이 새알 수거의 이권을 놓고 갱단과 수거업자들 간에 OK 목장의 결투를 방불케 하는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혈투는 지금도 파라론 섬의 새알 전쟁(egg war)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들면서 섬의 생태계적 중요성이 알려지자 비로소 테드 루즈벨트 대통령이 섬을 보호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1970년대 부턴 사람출입이 금지되고 새와 물개들이 왕국을 되찾게된 것이다.
"파라론 섬엔 두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선장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던진다. "1946년 남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원폭실험이 있었지요. 그 때 타깃으로 쓰였던 배가 퇴역한 미 항모 인디펜던스였지요. 그 잔해가 이 곳에 수장(水葬)됐습니다. 그 후 1970년까지 수만 드럼의 방사성 폐기물들도 함께 버려졌지요." 요즘 뉴스에 떠들썩하는 일본 원전들의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앞바다 생각에 섬뜩한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비밀은 올해 플랑크톤이 격감한 겁니다. 파라론 섬 지역은 깊은 수심으로 바닷물의 용승작용이 활발한 곳입니다. 플랑크톤의 보고지요. 그러나 근래 바닷물이 뒤섞이질 않아 플랑크톤이 사라졌습니다. 그 여파로 먹이사슬의 대 혼란이 오고 있지요".
선장은 돌섬 가에 있는 바닷새와 물개들의 시체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특히 크릴을 좋아하는 청고래를 올핸 보지 못했습니다." 선장이 문득 새 울음소리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배의 마스터엔 조나단 리빙스턴을 닮은 오뚝한 부리의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멀리 바라보고 있다. 마치 청고래가 오면 비밀을 알려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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