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했던 변수들이 잇따르면서 ‘시리아 드라마’가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3주째 접어든 시리아 드라마는 매주 마다 오바마 대통령의 옵션이 깜짝깜짝 바뀌면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전해지면서 8월 마지막 주엔 이를 응징하기 위한 미사일 공격이 불가피한 옵션으로 인식되었다. 9월 첫 주, 대통령의 독자적 군사공격권을 마다하고 택한 오바마의 두 번째 옵션은 의회를 향한 공격승인 요청이었다. 의외의 승부수에 뉴스는 뜨거웠지만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군사공격에 대한 여론은 ‘회의적’에서 ‘적대적’으로 악화되었고 승인 결의안 통과는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도 힘들어 보였다. 9월 둘째 주, 벽에 부딪친 오바마에게 터널 끝 빛이 보이듯 하나의 출구가 열렸다. 시리아에게서 화학무기를 포기를 받아내겠다는 외교적 해결책, 러시아가 던진 이 ‘구명대’를 오바마는 세 번째 옵션으로 받아들였다.
오바마 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기대를 걸고 있는 세 번째 옵션, 러시아 중재안은 계획된 전략이 아닌 ‘우연의(accidental)’ 산물이었다. 런던을 방문 중이던 존 케리 국무장관은 9일 “아사드가 어떻게 하면 군사공격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저 가볍게 “다음 주 중 모든 화학무기를 국제사회에 넘겨주면 된다…그러나 그렇게 안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은 기자도, 답한 장관도 ‘캐주얼하게’ 넘겨버린 대답을 확 낚아 챈 사람은 따로 있었다. 케리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전화를 받았고 비행기가 워싱턴에 닿기도 전에 라브로프는 미국의 군사공격을 막기 위한 시리아의 화학무기 포기 약속을 핵심으로 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평화적 해결책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계기는 우연이었지만 군사공격에서 외교협상으로 시리아 대응책이 급선회한 배경까지 우연은 아니었다. 관계 당사자들의 이해득실 계산이 적절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거센 반대여론과 의회표결 패배위험에 직면한 오바마는 말할 것도 없고, 의원 각자의 ‘양심’이나 소신보다는 지역 유권자와 당 지도부의 눈치 살펴 찬반 정하느라 고심하다가 표결 연기로 한 숨 돌리게 된 연방의회, 혼자만 살인정권 두둔하며 입장 불편했던 러시아와 큰소리와는 달리 미국의 공격이 불안했던 시리아, 신중론을 내세우며 외면했던 유럽연합과 식물상태로 눈총 받던 유엔까지 모두에게 나쁠 것 없는 게 바로 외교 협상이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모든 화학무기 통제권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이전하겠다는 내용의 러시아 중재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받아들였다. 화학무기가 국제 감시 하에 통제되다가 점차적으로 폐기될 것이라니! 한 세기에 걸친 국제사회 노력의 실현에 갑자기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대로 믿기엔 너무 솔깃하다. 더구나 ‘방해꾼’ 러시아의 제안인데…진의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하다. 시리아는 지금껏 화학무기 사용은커녕 보유사실조차 인정 안했는데 통제권을 넘겨주겠다니, 중재안의 진정성과 실현가능성은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공격모면 위한 시간벌기 꼼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묵살하기엔 아까운 기회다. 오바마도 10일의 대국민 연설을 통해 기회의 활용의사를 분명히 했다.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엔 군사개입을 유보하겠다면서 의회표결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솔직히 이번 오바마의 연설은 여론의 방향을 바꿀 만큼 감동적이지도, 강력하지도 않았다. 외교협상으로 옵션을 바꾸고 공격과 외교, 두 가지를 한데 섞어 부랴부랴 수정하느라 그런지 새롭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은 두루뭉술한 내용이었다.
미국의 군사공격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평화적 해결책도 나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 시리아의 약속이행 압박을 위해 미사일 공격에 대한 의회승인 결의안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오바마의 주장엔 일리가 충분했다. 그러나 거센 반대여론과 의회 내 반대기류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앞으로도 오바마에겐 산 넘어 산이다. 국내 반대만이 아니라 국제사회도 아직은 난기류다. 러시아는 이미 발목잡기 조건 제시를 시작했고 설사 유엔에서 결의안이 ‘무사히’ 통과된다 해도 실제 화학무기 이전과 폐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치밀하게 준비된 플랜이다. 지금까지 ‘우왕좌왕’으로 표현되어온 시리아 정책에 구체적 일정과 명분 뚜렷한 전략을 담은 ‘플랜’을 제시하며 과감한 리더십을 국내외에 과시해야 한다. 우선 의기양양해 있는 러시아와 시리아에게 결의안 시행의 데드라인을 통보하고 의회에도 새로운 표결 일정을 제시해야 하는데…그것조차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군수업자나 강경 매파가 아닌 보통사람들에겐 전쟁의 늪으로 끌려들어가기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평화적 해결이 백번 나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시리아 드라마가 짧고 강한 미니시리즈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낫다. 질질 끄는 연속극으로 오래오래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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