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 온 느낌이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 준다. 가을에 어울리는 언어는 겸손일지 싶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과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겸손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자기를 더 알리고 싶어 하고, 자기를 더 돋보이게 하려는 자기 PR의 시대에 겸손은 어쩌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다분하다. 심지어 겸손을 과거 농경시대의 봉건적 예절이거나 상류 사회의 사교적 에티켓 정도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겸손만큼 중요한 덕목도 그리 많지 않다. 동서양의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을 보아도, 또 성경을 보아도 겸손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요 인간 본래의 덕목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겸손은 과거는 물론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소중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겸손을 의미하는 영어 낱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더욱 이런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영어로 명사(이름씨) 겸손을 humility, 형용사(그림씨)‘겸손한’을 humble 이라고 한다. 이 두 단어의 어원은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이다. 겸손과는 다른 낱말이지만 인간 혹은 사람을 의미하는 휴먼(human)이나 호모(homo) 역시 같은 어원인 흙(humus)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우리 사람은 근원적으로 흙의 물성(物性)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사람이 갖추고 지녀야 할 덕목 역시 흙에서 배워야 한다는 점을 말해 준다. 겸손이 흙에서 유래 했다는 사실은 사람은 자신의 물질적 근원인 흙의 속성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흙에서 배워야 할 가치는 단연 겸손이다. 세상에서 흙처럼 겸손한 것은 없다. 물론 동양의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물의 부드러움에서 인간의 도리와 겸손을 배우라고 가르쳤지만, 사실 물 이상으로 겸손을 상징하는 것은 흙이다. 흙은 우리 사람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온갖 동식물들을 자신 위에 살게 한다. 눈과 비는 물론이요 인간의 모든 것들 심지어 오물과 쓰레기조차 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풀과 나무에게 뿌리를 내리게 하고 영양분을 주어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을 예쁘다 하고 나무를 칭찬하지, 흙을 눈여겨 칭찬하지 않는다. 그래도 흙은 묵묵하게 말이 없으며, 그저 밟힐 뿐이다. 흙의 겸손함이다. 이처럼 겸손의 어원을 살펴보면 우리는 ‘겸손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겸손을 선택할 처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흙에서 왔다. 그러므로 겸손은 선택적 에티켓이 아니다. 누구나 흙의 겸손을 본받아 살아야 하며, 겸손은 모든 사람의 본래적 덕목이 된다. 겸손을 일깨우는 가을이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인 겸손을 모르고 자신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나 사회적 성취에 대하여 교만하거나 오만했던 일이 있다면 다시 겸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겸손은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이다. 이 시대 무한 경쟁 속에서 자기 높임이나 자기 홍보에 앞서, 조용히 내면을 응시하며 겸손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자신의 유한성, 자신의 피조성, 자신의 무력성을 깨닫는 영적 겸손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고마움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성경, 필립 2:3) 인격적 겸손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전(全)지구적 생태계 위기 속에서 오만의 극치인 인간 중심적 생각을 내려놓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요 자연 만물과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관계임을 깊이 깨닫는 생태적 겸손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이다. 겸손은 서로를 이어준다. 하늘과 사람은 영적 겸손을 통하여 만난다.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이웃과 이웃은 인격적 겸손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가 된다. 사람과 자연 만물 역시 생태적 겸손을 통하여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된다. 겸손은 오늘 이 시대는 물론 미래 시대에도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겸손은 우리가 영원히 서 있어야 할, 사람 본래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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