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신문사의 매각 소식이 알려진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내가 워싱턴 포스트를 처음 안 것은 1975년이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내가 수강 신청한 영어과목이 한 학기 내내 1974년에 출판된 ‘All the President’s Men’ 이란 제목의 책을 읽어 가면서 책의 내용에 대한 토론과 에세이 작성을 하는 수업이었다. 이 책은 당시 워싱턴 포스트 신문기자였던 밥 에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닉슨 대통령이 연관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심층조사해 보도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2년 후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으로 두 기자 역을 맡아 영화화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기사로 일약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물론 그 후 나도 워싱턴 포스트 애독자로서 오래 동안 이 신문을 구독해 왔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등장한 무료 신문들로 인해 여러해 동안 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고전하다가 80년간 이 신문사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해 왔던 그래함 가족이 손을 떼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내가 워싱턴 타임스의 중견간부 언론인을 만나 워싱턴 포스트의 위상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워싱턴 포스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신문사의 경쟁자라고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워싱턴 포스트야 말로 “newspaper of record”라고 했다. 즉, 어느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할 때 워싱턴 포스트를 의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만큼 보도에 정확성, 객관성, 그리고 높은 신뢰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반해 자신이 속해 있는 신문은 일정한 편집 방향을 두고 기사가 쓰여 진다고 했다. 그러기에 보도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번의 매각 소식을 접하면서 그 동안 내가 접해왔던 여러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취재 윤리의 일면이 생각났다. 이들의 윤리성이 신문의 명성에 걸맞게 높게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내가 초선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동료 교육위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나면 종종 회의장 가까운 곳에 모여 술을 한두잔씩 하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 때 담당 워싱턴 포스트 기자도 가끔 합석을 했는데 항상 자기 술값은 자기가 지불하는 것이었다. 교육위원이나 교육청 홍보담당자가 얼마 안 되는 금액이니 대신 내겠다고 해도 한 번도 허락하는 적이 없었다. 먼저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경우 자기가 마신 술값을 지불하기에 충분한 돈을 꼭 놔두고 가곤 했다. 이러한 윤리 의식은 교육 담당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 같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갈 땐 할 수 없이 기내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지만 나중에 그 음식 값을 꼭 백악관에 지불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백악관 주최 백악관 담당 기자 만찬에 기자들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만찬의 경우 만찬 티켓을 팔지도 않고 나중에 만찬 값을 지불하는 방법이 없기에 아예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들은 교육위원들과 인터뷰로 만날 경우 절대로 교육위원으로부터 식사는 물론 음료수 한 잔도 제공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뷰를 할 경우 오히려 취재를 나온 기자가 인터뷰이에게 먼저 내가 사면 어떻겠느냐고 물어 보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취재 대상으로부터 그러한 제안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한번은 백악관에서 고위 비서진들을 만날 수 있는, 기자로서는 정말 둘도 없는 아주 좋은 기회의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자신이 음식 값을 낼 수 있는 행사가 아니고 반대로 향응을 제공받는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장시간의 회의장에서 쉽게 건네 질 수 있는 청량음료수 한 잔이나 과자 하나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와 공직자에 대한 정확보도와 견제의 사명을 띠고 있는 기자가 조금이라도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윤리적 자세에 사실 나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유수 신문사 기자들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공직자 모두에게도 절대적으로 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윤리 자세를 생각해 볼 때 요즈음 신문에 거듭 보도되고 있는 공직자들의 느슨한 선물 수령 소식들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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