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젊은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에 힘이 된 주요공약 중 두 가지는 양극화된 워싱턴의 ‘초당적 정치’와 전임 부시가 벌려놓은 ‘중동전쟁 끝내기’였다. 그런데 5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 오바마는 새로운 중동전쟁이 시작될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초당적은커녕 더욱 양극화된 의회의 기적 같은 ‘초당적 합의’에 위기탈출의 성공여부를 건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민들이 여름의 마지막을 즐기던 지난 노동절 연휴, 그 72시간 동안 워싱턴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 사용으로 수백명 어린이를 포함, 1,400여명의 자국민을 살해한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를 당장이라도 공습할 것처럼 보였던 오바마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군사행동을 하기 전 의회승인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시리아 공습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권한으로 얼마든지 오바마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참모들조차 놀란 깜짝 반전이었으니 귀향하여 휴가를 보내던 연방의원들이 소스라친 것은 당연했다. 지도부는 물론 상당수 의원들이 일요일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고 긴급뉴스와 분석이 잇달았다 - 집권 5년이 다 되어가도록 제대로 된 초당적 타협 한번 해보지 못한 껄끄러운 의회에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걸다니, “엄청난 도박이다…도대체 왜?”오바마는 “민주적 토론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민의를 대표하는 의회승인을 받겠다”며 민주국가의 기본을 강조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화학무기 사용’이라는 오바마 자신이 직접 경고한 ‘금지선(Red Line)’을 버젓이 넘어선 아사드에 대한 군사응징을 결정한 이상 의회승인 요청이 오바마에겐 “위험하지만 가치 있는 도박”이라고 진보 평론가 프레드 캐플란은 강조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국내의 반대여론은 높아 가는데 국제사회 지지구축에도 실패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 제재는 물 건너갔고 믿었던 영국의 의회거부로 나토 옵션까지 함께 사라졌으며 일부 회원국이 지지 신호를 보내면서도 공식적 입장표명은 꺼리는 아랍연맹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기 없는 정책시행에 앞서 ‘정치적 보호막’을 구한 것이며 책임을 나눠질 ‘공범’을 물색한 것이라는 비난도 나왔고 최고 사령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CNN의 국가안보 전문가 피터 버겐은 오바마는 실용주의자이며 성과가 기대되는 주요사안에선 과감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가라고 분석한다. 예상되는 득과 실을 치밀하게 계산한 후에 승부수를 던졌다는 뜻이다.
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여론의 반대는 누그러들 것이다. 시리아사태가 악화될 경우 의회로부터 추가승인을 받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집권2기 오바마의 입지는 외교정책뿐 아니라 국내문제에서도 강화될 수 있다. 대통령의 군사공격을 ‘초당적으로’ 승인한 의회가 바로 몇 주 뒤 연방정부를 폐쇄시키거나 국가부도사태를 맞게 하겠는가.
그러나 결의안이 부결된다면 두 가지 최악의 옵션에 직면하게 된다. 표결결과를 무시하고 독자적 공격을 감행하여 의회와 여론의 분노를 사든지, 아니면 아사드 정권의 ‘반인륜적 만행’에 눈 감은 채 공격을 포기해야 한다. 대통령의 신뢰도와 미국의 위상이 동반추락하면서 독재자들은 한층 대담해지고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오바마는 ‘레임덕’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의회표결 승리에 오바마의 집권2기가 달려있다. 그러나 승인된다 해도 모든 게 장밋빛은 아니다. 권한 축소로 자신만이 아니라 미래 대통령들의 손발까지 묶어놓았다는 비난은 기우라고 접어둔다 해도 의회승인 기다리느라 계속 지연될 경우 ‘기습’ 공격은커녕 아사드에게 대비시간만 벌게 해 줄 것이라는 지적은 이미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부대와 군장비를 민간인 지역으로 옮기고 있어 아사드 응징보다는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지난 며칠 백악관의 전방위 설득작전으로 의회 지도부는 ‘초당적’ 지지를 표명했고 어제 상원 외교위는 수정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다음 주로 예정된 양원 본회의 표결 결과는 낙관하기 힘들다. 당론을 정하지 않고 각 의원들의 ‘양심’에 의거한 투표다. 오바마를 싫어하는 공화당이라도 친이스라엘 성향이나 매파 의원들은 지지표를 던질 것이다.
그러나 의외의 복병이 있다. 리버럴 민주당과 자유주의 티파티의 ‘초당적 결탁’이다. 이념은 다르지만 ‘전쟁반대’라는 목표는 같은 적과의 동침이다. 이들의 연합을 깨고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오바마의 승산은 희박해진다.
2002년 부시의 이라크전쟁 결의안을 승인했을 때 그것이 10년 전쟁의 백지수표가 될 것으로 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리아는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뜨거운 감자’를 받아든 의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신의 대통령직을 건 승부수를 던져놓고 멀리 러시아에서 의원들의 ‘표심’을 가늠하느라 오바마의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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