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친구들을 만날때 제일 많이 쓰는 말이 밥 한번 먹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지나 친구나 우리들은 생각이 다 같을 수가 없어서 어느 땐 자기 주장을 하다보면 선의의 쟁론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슬그머니 마음이 상해서 자주 만나던 사람들도 그 사이가 뜸해지는 경우가 있다.
또 어느땐 말이 잘못 전해져서 서로에게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괜히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다쳐서 한동안 으르렁 거리다가도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좀 후회도 생기고, 이게 아닌데 하며 서로의 마음을 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때 전화를 한 사람이 우리 만나서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하게 된다.
이 정도면 벌써 다 마음이 풀어진 상태다. 만나서 맛있는 밥 한끼를 먹고, 별로 구구한 변명을 늘어 놓지 않아도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옛날의 관계가 회복된다. 이렇듯 음식을 가운데 두고 나누는 것은 음식 뿐 아니라 서로의 정이다. 내가 살고 있는 라스모어는 특수한 환경 탓에 아침마다 운동도 함께 하고 서로 더 자주 만나게 되어서인지 밥도 더 자주 먹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삼식이, 이식이, 일식이, 영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하루 세끼 밥을 차려주는 남편은 삼식이를 삼식이 새끼, 두번은 이식이 놈, 한번은 일식씨, 한번도 안먹는 남편은 영식님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크게 웃은 일이 있다. 언제부터 집에서 밥을 덜 먹는 남편들이 더 대우를 받는 세상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아무튼 늙어 가면서 마누라도 일생동안 해왔던 밥 당번에서 해방되고 싶은 심정은 알 만하다.
그런데 이런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일 수 있다. 식구라는 뜻은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 상에서 같은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와 잘 익은 김치와 몇가지 나물들을 먹으며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는 한 가족의 모습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의 상징이다.
우리 남편은 행인지 불행인지 영식님에 속한다. 우리들은 늙어가며 함께 밥을 먹는 일은 극히 드믈다. 남편은 양식을, 나는 한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각자 스스로가 해먹으며 밥먹는 시간도 다르다. 나는 일찍 먹고 남편은 느즈막하게 먹는다.
젊어서 나는 남편이 다른 남편들처럼 한식을 잘 먹었으면 참 좋겠다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내 친구들의 남편은 김치찌개도 심지어 냄새나는 청국장까지 먹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런 점에서 늘 쓸쓸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요리를 많이 했다. 주로 저녁에는 양식을 많이 만들었지만 큰 아들이 집에 있을 때는 그 애를 위해 늘 김치찌개를 따로 만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애는 밥과 김치찌개만 있으면 한공기 밥을 뚝딱 해치우곤 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집을 떠나고 빈둥지가 된다는 것은 외롭지만 편리한 점도 있다. 그야말로 밥 당번에서 좀 해방이 됐나 싶어도 아직 남편은 건재하고 은퇴를 해서 집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다. 주위에 그런 남편들이 더러 있는데 그야말로 마누라들이 제일 고생이다. 어디 외출을 하고도 밥 시간이 되면 그들은 안절부절이다. 남편들 중에는 시리얼 하나 자신이 갖다가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통 칠십대나 팔십대 남자들은 옛날부터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아들이라고 모두 해다 바쳤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 습관만큼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장수하는 사람들일수록 많이 움직인다고 한다. 그리스의 한 섬에 사는 장수촌 사람들에게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보통 양치기가 직업이었기 때문에 많이 걷고 좋은 치즈를 먹고 늘 주위에 친지들이 많아서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의사들은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피하고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라고 충고한다. 더구나 나이가 많을수록 고독은 우울증을 불러오고 또 우울중은 치매를 키운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꼭 해 먹는다. 어떤 친구들은 귀찮다고 안 해 먹지만 아직 좋아하는 이웃이나 친구들을 불러다 음식을 해 먹이는 일도 아직은 그런대로 괜찮다. 이런 일들이 귀찮아 지면 그땐 정말 내가 늙은 것일께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맛있다고 이구동성이면 신이 난다. 이런 일상의 것들이 사람 냄새 피우며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며칠 전에 세살박이 니코의 생일이었다. 나는 그애가 제일 좋아하는 콩나물 무침과 바비큐 치킨과 김을 사들고 갔다. 따끈한 밥에다 김을 찢어 가지고 콩나물을 얹고 닭 살코기를 얹어 주면 그애는 조그만 붕어 같은 입으로 맛있게 받아 먹는다. 그애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오늘 끄랜마가 오냐고 묻는다고 딸애는 말했다. 왜 하필 그애만 콩나물을 ‘콩나누’라고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는지 나도 모른다. 그런 그애 몸에 동양인의 유전자가 살아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더 신통하고 귀엽다.
늙어 갈수록 주위에 밥 한번 먹자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건 밥도 밥이지만 서로 정과 사랑을 나누려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치매는 영혼을 잃어가는 병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누구나 다 병 중에서도 제일 무서워 한다. "내일 어때? 밥 한번 먹을래? 그런 전화가 많이 올수록 덜 외롭고 사는 맛이 나고 치매 같은 병에서도 멀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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