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갔던 엄마가 돌아왔다.‘ 샤넬’ 썬 글라스를쓰고,‘ 루이비딴’ 화장품 케이스를 들고 왔다. 모두 짝퉁이다. 파마머리도 생머리로 변신을 했다.
그녀는 내일부터 화장품 세일즈로 나선다며 스타일 변신은 필수라고 했다. 마치, 자신이 비웠던 시간들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아빠도 엄마의 헤어스타일만 타박을 했다.
“누나, 머리가 그게 뭐냐?”“요즘 스트레이트파마가 유행인 것 몰라?”“그건 젊은 애들 얘기지.”아빠가 얼굴을 찡그렸다.
“야매 파마가 이정도면 됐지. 뭘!”엄마의 볼멘소리다.
“또 야매야?”“시끄러! 네가 돈 줬어. 왜, 자꾸 따져!”“그러니까, 날 가수로 밀어 줬어야지!”드디어 아빠는 목소리까지 커졌다.
“네 나이가 몇 살이데 아직도 가수타령이냐!”“에이, 썅! 또 그 얘기.….”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싸움부터 했다. 유행이라면 무조건 따라하는 엄마도 문제다. 그녀는 벌써오래전에 쌍꺼풀에 코 수술까지 받았다. 물론 무면허 시술자에게 야매로 받긴 했지만, 요즘은 보탁스가 유행이라며 눈가에 잔주름, 팔자주름, 입술까지 부풀렸다. 동네 스킨케어에서 세일하는 보탁스를 맞았는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 수입한‘ 메이든 차이나’ 약품들이라며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다.
아무튼 그녀는 비가와도 킬 힐을‘ 보통 하이힐보다 훨씬 높은 굽’ 신고 밤에도 선글라스는 헤어밴드처럼 머리에 얹고 다녔다. 긴 생머리에 하이라이트까지 한 모습은 누가보아도 국적 불분명나이 불분명이다. 아빠는 질색을 했다.
“누나, 치매 걸렸니? 제발, 나이 값 좀 해라!“왜? 내 나이가 어때서. 할렐루야 아저씨도 영레디라고 하는데.”“이-그 시끄러워!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이 화상아!”엄마의 중증은 아무도 못 말렸다.
오늘은 라브레아 팍에서 스케이트보드 베틀이있는 날이다. 그곳은 우리들의 안식처다. 해가 지고 별이 뜰 때까지 우리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랩과 힙합의 삶을 사는 곳이다. 오늘 시합에서는 여자 아이들의 비명소리로 점수가 매겨질 것이다. 그녀들은 명품 스케이트보드와 헬멧의 색상만 보고도 아우성치는 애들이다. 엔지도 그중에하나이긴 하지만.
얼마 전, 샌 피드로에서 스케이트 묘기 페스티벌이 있었다. 전국에서 유명 스케이트 보더들이모여 겨루는 대회다. 나도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필 그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이번에는 꼭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까지 하고 한 대밖에 없는 중고차까지 끌고 나갔으니, 나만 미치고 점프 할 일이다. 내가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혼자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아빠는 길길 뛰었다.
“야, 이 정신 빠진 새꺄! 너까지 왜 이러니? 넌이제 겨우 14살 미성년자라고. 제발, 정신 좀 차려.
쌔캬!”이런 젠장! 스케이트 페스티벌은 구경도 못하고 야단만 실컷 맞고 약이 올라 방방 뛰는 내 앞에 엔지가 아이 폰을 들고 나타났다. 칼리지 다니는 언니 것을 슬쩍 한 모양이다. 지금 나에게 훔친 물건이면 어떠랴, 아니 솔직히 그 순간은 집나간 엄마를 만난 것 보다 더 반가웠다. 당장 구글을 클릭해서 하이라이트만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지난번 화살 맞고 추락했던 독수리의 진수를 만회 할 기회다. 베틀을 위해 죽도록 연습도 했다.
스피드를 즐기다 다쳤던 발목도 깨끗이 나았다.
엔지도 핑거크로스로 날려 주었다. 그건 행운을빈다는 뜻이다.
나는 신바람에 영혼처럼 가볍게 집으로 날아왔다. 오 마이 갓! 집 앞에서 박살난 헬멧과 스케이트보드가 나를 맞이할 줄이야!.… 순간, 정신이아찔, 두 다리가 휘청, 머리통 잡고 주저앉았다.
가물거리는 실바람 사이로 하얀 머리 독수리의부러진 날개가 파닥 거렸다. 엔지의 핑거크로스도아른거렸다.
그 순간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던 아빠의 얼굴이 스쳤다. 앞뒤 생각은 생략, 부우웅 날아서 현관문짝을 걷어찼다. 뇌리에서는 ‘한방에 끝내야지!’ 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벌써, 상황 대비를한 모양이다. 쥐 죽은 듯 조용 했다.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발길에 걸리는 대로 걷어찼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엎어지는 빨래 통에서 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고 쉰내나는 티셔츠를 챙겨 책가방에 쑤셔 넣고 돌아섰는데“야! 이 새끼야, 책가방도 안 내려놓고 어딜 또가아…?”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였다. 두 번 다시 듣고싶지 않은 소리다. 나는 대답 대신 옆으로 침을찍 뱉어 버렸다.
“야아! 싼 어부 비치 개자식아! 어딜 가느냐고-오?”저 소리는 외로움에 울부짖음이다. 차라리 그렇게 애원을 할 것이지.…빨간 신호등 앞이다. 길 건너 KFC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영감과 눈이 마주쳤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옆에 타코 벨에서도 1불에 두 개 세일이다. 배가 고파 죽겠다. 빈주머니로 손이 갔다. 그때다. 경찰차가 내 앞으로 와서 멈춰 섰다. 괜히 불안해 졌다. 나도 모르게 빨간불을 무시하고 길을건넜다. 달려오던 차들이 급브레이크 밟았다. 사이렌까지 울부짖었다.
“거기 서! 거기 서라고!”순간, 뇌리에서 다그쳤다. ‘빨리 도망쳐!’ 라고.
야구 캡을 푹 눌러 쓰고 다리의 탈력을 확인했다. 죽어라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두 다리는 자동머신처럼 달리고 심장에서는 리드미컬한 비트를 쏟아냈다. 마치 내 귀에는‘ 도망쳐! 도망, 도망,도망.….’ 하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혼비백산을 하고 아파트 문을 걷어찼다. 순간, 아빠의 게슴츠레한 눈에서 불똥이 번쩍 틔었다. 동시에 다급한 소리가 같이 터졌다.
“빨리 옷 벗어 쌔꺄!”얼떨결에 티셔츠를 훌러덩 벗었다.
“밑에도 쌔꺄! 빨릿!”숨통을 조이는 다그침이다. 나는 벌거벗긴 채로달달 떨었다. 아빠도 밖에서 울부짖는 사이렌의숨이 막혔는지 다시 악을 썼다.
“빨리 튀어! 쌔꺄! 빨리 빨릿!”그의 검지가 비취 타월로 가리진 창문을 가리켰다. 스카치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창문이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집어 들고 스턴트맨처럼 뛰어 내렸다. 죽을 둥 살 등, 흘러내리는 아빠의 반바지를 움켜쥐고 죽어라 달렸다. 얼마를달렸을까. 어디쯤일까? 아빠의 게슴츠레한 눈에서튀던 불똥이 자꾸만 번쩍거렸다. 나는 나의 동물적인 육감 믿고 그대로 몸통을 되돌렸다.
오던 길을 뒤돌아서 죽어라 뛰어 가보니, 고등동물에 진화된 후각은 아파트 앞에 구경꾼들 사이로 채찍의 고통을 맛보고 해 주었다. 그는 좀 전에, 내가 벗어 놓았던 티셔츠와 스키니 진을 입고,야구 캡까지 쓴 채로 두 손이 묶여 있었다. 그는엎어 진채로 헐떡이는 나를 향해 윙크를 했다. 마치‘ 빨리 도망쳐 쌔캬!’ 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아빠는 장거리 트럭 운전수였다. 지금은 술 때문에 직장도 잃고 미래가 불투명한 삶을 살지만,그의 진짜 꿈은 재즈 가수라고 했다. 생긴 모습이나 창법은 영락없이 현철아저씨인데, 뽕짝을 촌스럽다고 하니 너무 웃겼다. 아빠가 진짜 재즈를 좋아한다면, 아들이 좋아하는 랩과 힙합을 갱스터의 폭력이라고 무시만 하지 말고,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들의 생각도 들여다보고 소통 할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나는 항의도 해보고 사정 해봤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아빠, 힙합은 대중음악이에요. 요즘 빌보드차트에 올라온 상위권도 거의가 힙합이에요. 이젠힙합을 모르면 음악 얘기 못한다고요.”“야, 너 지금 날 가르치는 거냐? 건방진 놈. 가서 공부나 해!”재즈가수가 꿈이었다던 그는 술만 취하면 제임스 브라운 노래를 불렀다. 그의 비디오까지 틀어놓고 악을 쓰고 겅중겅중 뛰어보지만, 그건 세상을 탓하는 몸부림일 뿐이다. 혼자보기 아까워서눈물이 날 지경이다.
“아빠, 제임스 브라운 노래는 재즈가 아니고 소올 이에요.”생각해서 한마디 해주면 그는 화를 벌컥 냈다.
“ 시끄러 인마! 그게 그거지, 쪼끄만 놈이 어디서 따지고 그래!”그가 부르는 노래는 소올도 아니고 재즈도 아니다. 그저 장르도 없는 소리만 울부짖다가 힘 빠지면 한 맺힌 소리를 했다.
“얀마! 내 꼬락서니가 왜? 요 모양인지 아냐?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그때 너만 안 생겼어도…그럼 난 재즈카수가 됐을 텐데… 그러니까, 넌 고등학교에 꼭 가야 한단 얘기지 이 짜샤!”이-그 그때일은 엄마랑 그때 해결을 했어야지,이제 와서 날보고 어쩌란 말인지.…막상 집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무작정 라브레아 팍 반대쪽으로 걸었다. 지금쯤파크에 모여 있을 친구들이 생각났다. 엔지도 기다릴 텐데.… 태양은 정수리를 지져대는 거리에는배꼽티가 유행이라며 너도나도 뱃살을 들어 낸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 무리들 속에 엄마가 있을 줄이야. 갑자기 맞닥트린 엄마가 웬일로 관심을 보였다.
“어디 가니?”반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 역시도 반갑지 않다는 소리로“ 알 필요 없잖아!”했더니, 낌새를 챘는지 책가방을 낚아챘다. 사실 지난번에 샤넬로그만 보고 엄마 목걸이를 들고 나갔었다. 아는 형들이 짝퉁이라고 해서 엔지에게 생일 선물로 줘버린 적이 있다. 엄마는 그때도 가짜 목걸이에만 목숨을 걸었다. 이번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기어코 책가방을 열고 확인을 했다.
“이 옷들은 뭐야? 너, 또 가출하니?”대꾸를 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대답대신 책가방을 도로 낚아챘다. 가방은 그녀의 손아귀를벗어나지 못하고 부드득 터지는 소리를 내며, 그속에 들어있던 잡동사니들을 우르르 쏟아냈다. 가방 안에는 스케이트보드 40마일 존에서 60마일로 달리다가 받은 스피드 티켓도 있었다. 아마 그티켓의 요금을 엄마가 보았다면 사생결단을 냈을것이다. 나는 성난 가부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흔적도 없이 휴지통에 버린 티켓이 6개월만에 벌금까지 붙어서 집으로 찾아왔다. 이러면안 되는데… 방법을 몰라서 책가방에 쑤셔 넣고다니다 오늘 재수 없게 딱 걸렸다. 엄마의 갈고리같은 손이 잽싸게 티켓을 집어 들더니“까불지 말고 일찍 들어와라!”그녀의 킬 힐 소리만 또각또각 들렸다. 하필, 그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피터와 마이클한테 들켰다. 얼마나 창피하고 쪽팔리던지.…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아버렸다. 피터가 닺아 와서 말을 걸었다.
“괜찮아?”나는 겨우 고개만 끄떡거렸다. 다행히 그는 엄마의 가부키화장은 보지 못한 모양이다. 엄마의 가부키화장은 아빠가 날린 펀치의 흔적 감추기를 하는 것이다. 아빠의 펀치는 처음에는 시커먼 멍이 들고, 이삼일쯤 되면푸른색과 진 보라색으로 변했다가 마지막으로 노리끼리 해졌다가 제 색깔로 돌아오려면 2주정도걸렸다.
분장과 화장을 염두에 두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때론, 가부키도 되고 광대도 되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 화운데이션 두께만 보고도 펀치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더니, 아빠는 나를 보고귀신같은 놈이라고 했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의 손찌검 덕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꿈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아예, 그 손길을 즐기는 눈치다. 화장을 덕지덕지하고 확인까지 하니 말이다.
“엄마 예쁘니?”‘아니요. 너무 우스꽝스러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두고 봐! 난 꼭 메이크업 아티스트가되어서 할리우드로 진출 할 테니까!”‘아티스트는 아무나 되나요.’ 하려다 침만 꼴깍 삼켰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얼굴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분장과 화장으로 삶에 메이크업을 할줄 아는 프로패셔널 말이다.
피터는 내 꼬락서니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도움을청했다. 마이클이 들고 있는 스포츠 가방을 올림픽길 KFC 앞까지만 들어다 주면그곳에서 기다리는 아저씨가 케쉬 1,000불을 줄 거라고 했다.‘ 뭐? 케쉬 1,000불!’귀가 번쩍 띄는 소리다. 겨우, 서너 불락밖에 안 되는 거리에 달랑 가방하나 들어다주는데, 1,000불을 주겠다니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다. 가방도 슬쩍 들어보니 무겁지도 않고, 더구나 이 동네라면 골목골목지름길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나한테 이까지 것쯤은 피스 오브 파이다. ‘누워서식은 죽 먹기’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내손에 지금 당장 1,000불이 쥐어진다면, 나는 제일먼저 토니 학 ‘유명 스케이트보더의 이름’ 스케이트보드를 사고 다음은 은색 로고가 찍힌 하이 탑 나이키를살 것이다. 그리고 아이 폰도 구입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따끈따끈한 그린 색 지폐에서 잉크 냄새까지 솔솔 났다. 맑고 높은 하늘에서는 하얀 머리 독수리가 끼룩끼룩 비행을 하고 거리를오가는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들을 착실하게 채우는 모습들이다. 지붕위에 올라앉은 KFC 영감도평정을 찾았는지 안경 너머로 그윽한 미소를 보냈다.
어떻게 생긴 아저씨일까. 그 사람도 나 같은 아들이 있을까. 부자 아빠를 둔 그 애는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아빠도 부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저씨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겠지. 안정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겠지? 온갖 상상을 하며가방을 땅에 내려놓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두 명의 경찰관이 닺아왔다. 그들은 대뜸 내가 들고 있는 가방에 시비를 걸었다.
“무슨 가방이지?”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다. 솔직히 무슨 가방인지도 모른다. 당황하는 내 꼴이 그들에게 웃음을주었는지 그들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가방 열어!”명령을 했다. 내가 다시 머뭇거리자 히스팩닉경관의 긴팔이 가방을 낚아챘다. 그는 꾸겨진 종이 뭉치를 꺼내 들고 가방 안을 살피더니 갑자기“ 싼 어부 비치!”동시 다발로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나는 이를 앙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다.
도대체 아빠는 왜? 내 목숨 같은 스케이트보드를작살을 냈을까? 죽이고 싶다. 가방 심부름을 시킨피터도 마찬가지다. 경찰들의 발길이 날아드는 사이사이에 나도 모르게 기압을 넣고 단전이 힘을주었다. 아마 태권도에 길들여진 습관 일 것이다.
옆에 흑인경관이 눈치를 챘는지 욕설을 퍼부으며수갑까지 채웠다.
“갓 댐! 마마 퍽 큐!”그의 검지가 내 턱을 치켜 올리며 할렐루야 아저씨 같은 악센트로 느물거렸다.
“괜히 시간 끌지 말고 협조하지. 누구야? 이름불러봐. 그럼 넌 지금 당장 집까지 되려다 줄 수도있으니까.”나는 사실 그대로 설명을 했다. 피터와 마이클의 심부름이고 케쉬 1,000불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제발 믿어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되돌아오는 것은 돌덩어리 같은 주먹뿐 이였다.
“그래, 좋아 그럼 너희들 라브레아 팍에서 놀지? 그 애들 중에서 세 놈만 더 대봐. 그러면 넌풀어 줄께!”나는 어릴 적부터 피만 보면 겁이 나고 무서웠다. 아직도 나의 성숙도는 그 스테이지에 머물고있는지 손등에 묻은 코피를 보니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화장품 세일즈를 그만 두었다. 두 사람은 밤낮으로 승부 없는 싸움만 했다.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기권을 한 모양이다. 짝퉁 화장품케이스를 다시 들었다. 그건 새 직장을 구했다는 뜻이다. 그녀의 소원대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잡이라고했다. 시간에 억매이지 않는 프리랜서라며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그랬던 그녀가 불과 몇 칠 만에 그 웃음을 잃었다. 그녀는 집안에만 틀어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직장에서 누구랑 싸웠느냐 아니면 또 잘렸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서로가 골란 한건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그녀의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는 나이가 역력히 들어났다. 생머리에 볼륨은 어디로 가고 부석거리는 머리만 엉겨 붙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여자를 포기한 모습이다.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그런 엄마의 변화에도 걱정말라고 했다.
“야! 인마, 걱정 하지 마. 여자가 늙으면 다 그런거야. 넌 공부나 해. 알았지!”내 눈에 비쳐진 엄마의 행동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짝퉁 화장품 케이스를 열고 붓을 잡으면시간가는 줄 몰랐다. 파우더 뚜껑을 열고 분가루를 푹푹 찍어 툭툭 털고, 허공에다 대고 위로 아래로 쓱쓱 그리는 시늉을 했다. 대상도 없는 빈공간에서 누군가와 대화도 했다.
“아이고, 파우더가 코 속으로 들어갔네.”훅 하고 입으로 불어 냈다. 검정 눈썹연필을 꺼내 화가가 이젤에 데생 하는 품도 잡았다. 마치밑그림이라도 그릴 것처럼.
“어, 눈썹이 짝짝이네!”소매 자락으로 허공에 대고 쓱쓱 지우고 다시그리는 시늉을 했다.
“잠깐만요. 이번에는 왼쪽 눈썹부터 해볼까요.
그렇지! 됐어요. 라인이 살았네요. 볼터치도 해야지요. 피부가 하야니깐 핑크색이 어울리겠네요.”그녀는 브러시에 핑크색 파우더를 쿡쿡 찍어툭툭 털고 양쪽 볼을 살살 간질이듯이 볼터치를하는 시늉을 했다.
“와-아! 얼굴이 화사해졌네요! 립스틱 색깔은진한 핑크가 어떨까요? 흰 피부에는 핑크가 제일잘 어울리거든요.”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빠가 쿡쿡 웃었다.
“야, 저 나이에 소꿉장난 할 수 있는 사람은 네엄마뿐일 거다!”“아빠, 그게 아니잖아요.”“야, 인마! 그럼 네 엄마가 모노드라마라도 한다는 애기냐?”.“…”그녀는 의자를 끌고 자리까지 옮겨 앉았다.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누구시더라. 분명히 안면이 있는데.….”생각을 더듬는 것 같더니, 이마에 주름이 잡힐 만큼 두 눈을 바짝 치켜서 떴다. 오랜만에 진짜 아는 사람을 만난 표정이었다.
“아-아 Mrs, 게리시군요. 이게 얼마만인가요. 남편께서는 아직 건강하시죠. 사진도 들고 오셨군요. 그럼 오늘은 제가실력 발휘 좀 해야겠네요.”그녀의 실력 발휘란 별거 아니다. 짝퉁화장품 케이스에는 흰색 파우더 한통, 검정색 눈썹연필 한 자루, 핑크 색 볼터치,연한핑크, 진한핑크 색 립스틱과 아이들의 공작시간에 쓰는 찰흙 한 덩어리가전부였다. 그녀는 다시 파우더를 푹 찍어허공에 가로 세로 쓱쓱 문지로고 훅하고불어서 파우더 가루를 날리더니“Mrs, 게리, 핑크색 좋아 하셨죠. 볼터치는 연한 핑크, 립스틱은 핫 핑크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핑크색이 환상이지요!”그녀는 팔짱을 끼고 왼손으로 턱을 살짝 받치고 허공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핑크색이 정말 환상이네요!”했다. 화장품을 주섬주섬 챙겨 짝퉁케이스에 담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말대로 소꿉장난을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삶을 삶는모노드라마 한 것일까? 그런 다음날 엄마는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집을 나갔다. 아빠는 별일 아니라 했다.
“ 야 인마, 걱정하지 마! 네 엄마가 갈 때가 어디 있니? 금방 돌아 올 거야!”그건 아빠의 바램 일 것이다. 피터 엄마도 집나간 지 석 달째다. 피터는 집 나간 엄마가 보고싶진 안은데 화가 난다고 했다. 나도 화가 많이났다. 내일이 내 생일인데....... 기억이나 할 나나.…아빠도 집나간 엄마 때문에 화가 났는지 나만 보면 괜히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새끼야. 그 갓 댐 스케이트보드 그만 타고 공부 좀 해라! 새꺄!”이제 그의 폭언은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열에 받치는 날은 스케이트보드는 더 높이 올라갔다. 어딘가에 잠재해있던 에너지가 한꺼번에폭발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나를 최고라고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워 주는 사람은 그 아저씨뿐이다. 나는 하얀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아저씨가 좋다.
그는 흑인 특유에 오리 궁둥이를 뒤로 빼고흔들흔들 손발로 온 몸으로 장단을 치며 재즈, 소올, 리듬 앤 블루스, 팝송까지 할렐루야 리듬을 탄다. 마치 그의 할렐루야 리듬은 세상을 소통하는바람이나 물처럼 나의 삶 속에도 스며들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먹을 부딪치고 어께를부딪치며, 끌어안고 부비서 서로를 확인했다.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는 우정으로.
“헤이, 바디! 왓즈- 압? 오늘은 남자 냄새가 풀풀 나는대. 엔지도 잘 있겠지?”“그럼요. 그녀는 짱 이에요.”“할렐루야! 거 봐라! 내가 서두르지 말라고 했지. 시간이 해결 해줄 거라고. 여자란 남자하기에달린 거란다. 할렐루야!”아빠가 할렐루야 아저씨를 대동하고 보호실에나타났다. 그는 까만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눌러썼다. 아마 술에 덜 깬 모양이다. 콩글리시로 횡설수설 했다. 경찰들도 콩글리시 하는 아빠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혹시라도 아빠가엄마를 구타한 기록이 나오면 골치 아파 질수도테니까. 항상 그래 듯이, 오늘도 할렐루야 아저씨가 내 보호자로 나섰다.
경찰들의 설명은, 그들이 쫒던 놈들은 피터와마이클을 뒤에서 조종하는 놈들이라고 했다. 내가 가방을 넘겨받기 전부터, 피터와 마이클의 뒤를 쫓았고, 그들은 내가 가방 심부름만 한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가방에서마리화나가 나왔기 때문에 카운슬링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내가 범죄 기록도 없는 미성년자이긴 하지만 아빠도 같이 카운슬러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보호자자격을 잃어서 화가 났는지 아니면 카운슬링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보호실문을 나서자마자 나에게 갖은 욕설로 퍼부었다.
“ 야! 이 새끼야! 어쩌자고 쪼고만 놈이 벌써부터 경찰서를 들락거려! 이 정신 빠진 쌔꺄!”옆에서 듣고 있던 할렐루야 아저씨는 아빠가‘이 새꺄, 새꺄!’ 할 때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 야, 이 새끼야! 할렐루야~ 병신 새끼야! 할렐루야~ 쌔꺄, 쌔꺄! 할렐루야~.….”열 바친 아빠도 얼떨결에 할렐루야 리듬을 탔다.
“ 쏴랍! 할렐루야~~ 깟땜! 할렐루야~~ 오케이할렐루야~ 할렐루야~”내가 처음으로 아빠에 음악성을 인정한 날이다. 할렐루야 아저씨도 놀랐는지 입을 반쯤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두 팔을 벌리고하늘에 대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나를 감싸 안았다. 하늘에 천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어떤전율 같은 따듯함이 느껴지며, 두려움에 얼어붙었던 시간들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아저씨도 눈물이 글썽였다. 그의 큰 몸통에서 전해지는 울림은 사람의 소리 같지 않았다.
“ 마이 썬, 미안 하구나! 아들아! 인생이란 기쁨과 두려움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트 같은 것이란다.
뒤집히고 구를 땐 죽을 만큼 힘들지만, 참고 견디면 다 지나가버리는 것이지. 오늘도 우리는 롤러코스트를 타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달리는 거란다. 이젠 희망과 사랑만 실은 롤러코스트를 타고 올라가 보자꾸나! 아들아! 사랑한다. 할렐루야!”나는 잠시 생각했다. 할렐루야 아저씨가 진짜내 아버지이었으면 하고.…어릴 적 생각이 났다. 엄마는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면 나는 종이비행기를 접었던 기억이다. 할렐루야 아저씨의 노래도 불렀다. 내용도모르면서 아저씨를 따라 흔들흔들 흥얼흥얼 흉내를 냈었다. 오죽하면, 내 별명이 리틀 멍키였을까.
학교에서도 흑인가정에 입양아로 착각 할 정도였다. 지금도 흥분하면 흑인 악센트가 튀어나오긴하지만....... 아빠가 가르쳐준 비행기 노래도 불렀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어쩌면, 아빠는 어린 아들에게 세상을 자유롭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신 역시도 하늘을 마음 것 날고 싶었을 것이다. 아빠를 생각 하면 어둡고 침침한 재즈클럽이 나타난다. 낡은 밴드가 있고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애틱처럼 건제하는 테이블에, 서너 명의 집시들이둘러 앉아 색깔도 없이 살아온 시간들을 지껄이며,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모든 시름을 술에 타서 꿀꺽꿀꺽 마시고 새로운 아빠로거듭나는 줄 알았는데, 그런 날은 영락없이 엄마에게 손찌검을 했다.
나는 엄마가 불쌍해서 울었다. 그 때는 착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믿었었다. 아마 내 어린 영혼이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나는 오스카영화제에서 메이크업부문에서 최고의 아티스트 상을 받는 그녀를 상상하며 종이비행기도 높이 날렸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렇게 엄마가 옆에 있어서 행복 했었다.…엄마가 또 집을 나갔다. 이번에도 아빠는 걱정말라고 했다. 나는 예감이 좋지 않다. 그녀는 화장품 케이스와 핸드폰까지 두고 나갔다. 어디를 갔을까? 돌아오기는 할 것인지. 언제쯤? 오만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별안간 엄마의 핸드폰이자지러지게 울렸다. 엄마겠지 하고 냉큼 받았더니뜬금없이 장의사라고 했다. 순간, 불길 했던 예감이 이것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의사에서 무슨 일이지?’ 나는 말소리가 날아 갈까봐서 두 손으로 전화기를 움켜잡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본론을 제켜두고 교통사고부터합동장례식까지 긴 설명을 늘어놓았다. 몇 월, 몇칠,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오던 관광버스가 전복 사고가 났는데 남자, 여자, 아이들까지 사망자가 몇명이고, 부상자가 몇 명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지?’ 그는 대형 사고를 당하면 시신들의 얼굴이 부서져서 화장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래도 피해자의 가족들이 시신에게화장을 원할 때는 생전에 찍은 사진을 보고, 분장을 먼저 하고 화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나는 인내심을 총 동원 하느라 뒤 골까지 잡아 당겼다. 그의 말은 사망자들의 가족들은 단체로 장례식도 합동으로 하겠다는 의견을 모았다고했다.
‘그럼, 엄마가 죽었다고!’ 그는 사정이 이래서일손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금 당장 엄마의 일손필요하다고 했다. 지난번 밀린 돈까지 계산 하겠다며.…‘그럼, 엄만가 무사하단 얘긴가!’ 이런 젠장, 그럼 그렇다고 빨리 말을 할 것이지! 무슨 잔소리를그렇게....... 잠깐! 우리 엄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했는데!.…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잠시, 생각 속에 잠겼다. 그래! 하나님을 만나러천당 가는 길에도 아름답게 하고 가야겠지!....... 문소리에 깜짝 놀랐다. 엄마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왔다. 한손에는 토니 학 스케이트보드를 다른 손에는 나이키 운동화가 들려 있었다.
“ 네 생일이잖아!”“이거 명품이잖아요!”생뚱맞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 그래 맞아, 스케이트보드도 올림픽 종목 중에하나라더라.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타.”엄마가 오랜만의 활짝 웃었다. 나는 승리의 여신은빛 마크가 찍힌 나이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토니 학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올림픽 대로로 나섰다. LA하이스쿨에 등록하러 가는 길이다.
입상 소감
내 안에 꼭꼭 숨은 말과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씨름
그동안 삶에서 얻어진 단어와 문장들을 짜깁기 해보았다. 쓰고, 지우고, 얽어매서 붙이고 다시 쓰고를 수십 번씩했다. 내 안에 꼭꼭 숨은 말과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씨름이었다. 때론, 시간도 잊은 채 내 영혼을 불러서 시비도 했었다. 어설프지만 나름 보람도 있었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혼자 보낸 그 시간들을 부끄럽게 내놓았는데, 입상까지 시켜주셨으니 이제부터는 작정하고 문학 여행을 해야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 심사위원님들께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저에게 글짓기를 가르쳐 주신이언호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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