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를 뜻하는 ‘patent’는 원래 라틴어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근대 국가 중 처음으로 특허를 인정한 영국에서 발명가가 자기가 만든 물건의 제조 방식을 법적으로 보장해달라고 요청하면 모든 사람이 이를 알 수 있도록 왕은 ‘열린 편지’(letters patent)를 써줬는데 이것이 줄어 ‘patent’가 된 것이다. 14세기부터 이를 인정해오던 영국은 1624년 ‘특허법’을 제정, 이를 공식적으로 법제화한다.
‘특허’ 하면 뭔가 별난 사람들만의 관심거리일 것 같은 인상이 들지만 이는 한 나라의 국력과 직결돼 있다. ‘특허법’ 제정 당시만 해도 서유럽 변방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 18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며 떵떵거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바탕은 어느 나라보다 먼저 특허로 지적 재산권을 보호한 데 있다.
인간은 원래 편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을 별 볼 일 없는 침팬지 사촌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게 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누군가가 코코넛을 머리로 박치기 해 깨는 것보다 돌로 내리치는 것이 손쉽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누군가가 그냥 돌보다는 이를 손도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보다 효율적인 도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또한 이기적인 동물이다. 자기가 땀 흘려 얻은 노동의 과실이 자기한테 돌아오지 않으면 땀을 흘리려 하지 않는다. 열심히 깐 코코넛을 누군가가 홀랑 가져가 버린다면 어떻게 이를 쉽게 깔까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게 된다.
특허법이 한 일이 바로 코코넛을 깐 사람이 코코넛을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자기가 딴 열매를 자기가 먹을 수 있게 된 영국인들은 너도나도 손쉽게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특허도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이 역사상 처음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은 ‘영국은 파도를 지배한다’(Britannia rules the waves)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해권을 장악했기 때문이고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우수한 성능의 배와 대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배의 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특허법으로 기술 혁신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특허가 국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옛날에는 거함과 대포가 국력의 척도였다면 이제는 스마트폰과 탭이 이를 결정한다. 그러나 보다 나은 스마트폰과 대포 모두 기술 혁신 없이는 불가능 하며 이를 궁극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특허를 통한 지적 재산권의 보호다.
특허 수는 그 나라의 국력과 정비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과 60년 전 6.25의 폐허 위에서 신음하던 한국의 약진은 자랑스럽다. 지난 수년 간 한국의 특허 수는 일본, 미국, 중국 등 큰 나라에 이어 4위를 고수하고 있다. 2007년에는 GDP 대비 특허 수로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IT 강국이 괜히 된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이 전 세계를 무대로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누가 이 특허 전쟁에서 승리하느냐가 두 회사의 운명은 물론 두 나라의 국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3일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 판정한 것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이 급하기는 급했나 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선두주자였던 애플은 최근 삼성과의 경쟁에서 급속히 뒤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상 독점이었던 태블릿도 올 2분기 시장 점유율이 32%에 불과했는데 이는 1년 전에 비해 28% 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반면 삼성은 탭 판매가 277%나 늘었으며 시장 점유율도 7.6%에서 18%로 높아졌다.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은 미국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골적인 애플 편들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로써 미국은 특허 분쟁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삼성과 애플의 총성 없는 전쟁은 앞으로도 오래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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