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하는 디트로이트는 두 얼굴을 가진 도시다. 미국 공업 현대화의 발상지로 영욕의 세월을 지냈던 곳, 하지만 추억에 빠져 미래를 준비하지 못해 발목이 잡힌 도시.
디트로이트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병기창으로 불릴 정도로 전시 공업도시의 맹주를 자처했던 자동차의 메카다. 일자리가 풍부하고 자동차 노조의 힘이 막강해 노동자의 천국이었지만 인종의 벽을 넘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걸어온 비운의 도시이기도 하다.
1920년대 넘쳐나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흑인들을 피해 백인들은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8마일 로드’(8 Mile Road) 북쪽 교외지역으로 이주해 버렸다. 급기야는 1950년대 백인들이 길을 따라 2미터 높이의 분리대를 설치하면서 디트로이트는 인종을 나누는 ‘멸시’의 벽을 쌓고 말았다.
흑인들의 불만은 1967년 7월23일 새벽 폭발했다. 자정을 넘겨 영업하는 술집 단속에 나선 디트로이트 백인 경찰들이 때마침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2명의 흑인 병사의 무사 귀환을 축하 파티에 참석했던 82명의 흑인들을 체포했다. 흑인들을 태운 마지막 이송 버스가 현장을 떠나자 지켜보던 군중 속 한 흑인이 인근 옷가게의 유리창을 깨면서 폭동이 시작했다. 연방군이 개입하기 전 4일 동안 43명이 목숨을 잃었고 400여동의 건물이 불타는 등 LA 폭동 발발 전까지 미국 최악의 인종 소요로 기록된다. 하지만 정부는 인종주의를 반성하는 보고서까지 발표하면서도 이를 보듬어 줄 어떤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70년대 오일 쇼크로 디트로이트는 또 한 차례 위기를 맡는다. 8기통 대형 승용차 생산에만 매진하던 ‘빅 3’가 예기치 못했던 개솔린 가격 급등으로 판매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틈새로 파고드는 일본의 소형차들이 도심의 길거리를 장악하면서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과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재정 압박이 심해지자 자동차 회사들은 노조의 입김이 덜한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 시정부는 자동차와 같은 대기업 유치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이들의 이주를 막았다. 토지와 전기, 수도등 제반 시설을 제공하는가 하면 세금을 대폭 감면했다. 기업이 머물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막대한 예산 지원으로 재정이 줄어들자 시정부는 각종 세금 인상으로 충당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산층의 디트로이트 이탈 현상만 가속화 시켜 이주 능력이 없는 가난한 흑인들만이 시에 남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때 180만명이었던 주민들이 지금은 70여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흑인들의 인구 비율이 무려 83%로 미국에서 인디애나 주의 개리 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인구 감소는 곧 소비 시장의 위축을 가져오고 이로 인한 세수의 급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다.
불황의 악재까지 겹쳐 2008년 이래 공원의 70%가 문을 닫았고 가로등 10개중 4개가 들어오지 않는다. 경찰력은 지난 10년간 40%가 줄어들어 치안은 엉망이 됐다. 지난해 살인 사건이 10만명당 54.2건으로 전국 2위다. 비어있는 집만 7만여 채에 달하고 폭동 때 타버린 건물이 아직까지 방치돼 있는 황무지 도시로 변해버렸다.
영화롭던 시절에 만들어진 공무원 연금 부담까지 가속화 되면서 시정부는 지속적으로 세금 인상을 감행 했다. 재산세와 소득세는 미시간 주에서 가장 높다. 지난해 비즈니스 택스는 두배나 인상됐다. 중산층 이상의 주민들이 디트로이트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다. 대중교통 시설 부족도 디트로이트 발전에 족쇄를 채웠다.
디트로이트 일자리의 89%가 외곽에 위치해 있으나 주민들의 자동차 보유율은 전체의 4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중교통 시설이 발달된 것도 아니다. 2010년 디트로이트는 재정 적자를 이유로 저소득층의 발이 되던 대중교통 노선을 대폭 줄여 버려 외곽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도시 빈민들의 취업 기회까지 막아버리는 역효과를 냈다.
화려했던 과거의 추억에 발목이 잡혀 내부 인프라 구축에 소홀 했던 결과가 파산 신청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자초했다. 디트로이트 파산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한 도시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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