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백인여성과 1명의 히스패닉계 여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처음부터 조지 짐머만 무죄 평결에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자친구와 전화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흑인 고교생 트레이번 마틴을 범죄용의자로 잘못 추정하고 뒤쫓아 가다 몸싸움을 벌이던 중 총격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동네 자경단원 짐머만의 정당방위를 애초부터 인정한 것은 3명뿐이었다. 3대3으로 유무죄에 대한 의견이 갈렸었다고 CNN과 인터뷰한 배심원 G37은 말했다.
마지막까지도 한 명은 완강히 반대했었다. “그녀는 무언가 짐머만의 유죄를 찾아내려고 애썼지요, 그러나 찾지 못했습니다. 현행법에 그렇게 명시되어있으니까요”짐머만을 2급 살인혐의로 기소는 했지만 검찰에겐 힘든 케이스였다 :증거는 별로 없는데 여론의 분노는 엄청났으며 경찰의 초동수사는 엉성했고 짐머만에겐 플로리다의 ‘정당방위법’이라는 막강한 지원군이 있었다. CC-TV도, 목격자도 없었다. 2012년 2월 26일 비가 내리던 그 겨울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두 명 뿐인데 한 사람은 죽어버렸다. 제시된 정황은 경찰수사 당시의 피고 진술에서 나온 내용이었고 짐머만이 법정 증언대에 서지 않아 검찰은 반대심문의 기회조차 없었다.
검찰의 ‘스타 증인’이 될 뻔했던 마틴의 여자친구는 불안정한 태도, 적대감, 이해가 힘든 말투와 은어사용 등으로 신뢰감은커녕 소셜미디어에서 ‘빈민가 쓰레기’로 매도당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911 통화시 테입에 녹음된 구조요청 비명의 주인공에 대해 마틴과 짐머만의 어머니들은 각각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수십명의 증인들을 세웠지만 검찰은 결국 피고의 악의적 살해의도 입증에 실패한 것이다. 달려드는 마틴에게 심하게 구타당하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총을 발사했다는 짐머만은 정당방위를 주장했고 마틴은 자기 쪽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었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충분했다.
판정의 핵심요소는 총을 발사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독일계, 어머니가 페루계로 ‘히스패닉계 백인’으로 분류된 짐머만의 편견과 경솔한 판단이 이 비극적 사건 발생을 초래했다는 배경은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가려내는 법적문제가 아니었다.
포커스는 “짐머만이 마틴을 죽인 것은 정당방위인가?”였고 배심원들은 주어진 증거를 분석한 결과 “그렇다”라는 합의에 이른 것이다. 무죄평결은 전혀 예상외 결과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보통사람들이 묻는 포커스는 다르다 : 이혼한 아버지 집을 방문한 17세 소년이 동네 가게에서 캔디와 음료수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다 총에 맞아 죽었는데 어떻게 범인이 무죄로 풀려날 수 있는가?잘못이 없었던 한 아이가 어이없게 죽은 비극이 짐머만의 인종 프로파일링(피부빛과 인종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수사기법)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인 이상, 이해도 용납도 쉽지 않지만 재판은 끝났고 ‘준법시민’인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판결을 존중한다. 그러나 평결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사실이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신뢰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흑인사회가 분노로 들끓고 전국 곳곳에서 항의시위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정의 없인 평화도 없다”고 외치는 성난 시위대의 구호가 거리를 메웠고 빈부에 상관없이 흑인 아들을 기르는 부모들은 충격에 빠졌다. “트레이번은 바로 내 아들일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고통이다.
16일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미 최대 흑인권익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연례회의에서 짐머만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플로리다의 정당방위법을 비판하고 마틴 피살사건의 철저한 조사도 약속했지만 수천명 참석자의 눈물 섞인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미 최초의 흑인법무장관이 ‘흑인 아들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들과 공유한 고뇌를 털어놓았을 때였다.
홀더장관은 오래전 아버지가 자신을 앉혀놓고 “경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유 없이 검문 당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었듯이 자신도 15세 아들에게 같은 조언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말 계승을 원치 않았던 아버지-아들의 전통이었지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만 했다”면서 그는 이것이 우리의 아들들이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슬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주엔 여러명의 흑인 칼럼니스트들도 같은 경험을 이야기 했다. 부유한 백인지역으로 이사한 후 “16세 아들이 조깅하다 총에 맞지 않도록 구체적 방법을 강구해야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아들의 부모가 된다는 의미”라고 두려움을 털어놓기도 했고 “제약 없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과 인종편견이 주는 제약에 대한 경고를 동시에 심어주어야 하는 갈등”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사춘기가 되기도 전에 편견을 감지하는 흑인소년들이 일찍부터 익히게 되는 자신을 보호하는 대처요령, ‘흑인남성 규범’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고 전국의 흑인 소년과 청년들이 이번 재판에서 얻은 교훈은 “형제들이여, 조심하라!”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달 연방대법원은 “이젠 시대가 변했다”고 선언하며 소수계 차별을 막는 투표권법의 핵심조항을 무효화 시켰다. 미국 내 모든 소수계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 사는 꿈”을 믿었던 마틴 루터 킹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다음 달로 50주년을 맞는다.
이번 짐머만 재판의 결과는 미국이 아직 인종편견이 만연한 사회임을 증명하면서 대법원의 지난달 판결이 너무 일렀다는 것을, 그러므로 킹목사가 꿈 꾸어온 세상의 실현을 위해선 “앞으로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멀었다”는 것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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