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엥글(Richard Engle)은 중견 종군 기자다. 그의 현직은 미 NBC TV 방송국 수석 외국 특파원이다. 그는 1996년부터 중동지역 특파원 생활을 시작으로, 2003년부터는 이라크 전쟁터, 그리고 2008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 직접 찾아가서 전쟁의 실상을 취재했고, ‘아랍의 봄 운동(Arab Spring Movement)’의 근거지라고 불려졌던 국가들인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튀니지, 바레인 등의 나라까지 찾아가 그곳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이나 민중봉기의 생생한 상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엥글은 주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을 골라 찾아가 취재하는 기자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전쟁과 분쟁을 불러일으키는 기자’라는 별명까지 붙여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실시하여 한반도에 한창 긴장상태가 고조되던 지난 4월 초 그는 서울에 와서 그 상황을 보도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가 온 것은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 소문까지 퍼뜨렸다.
엥글은 전쟁과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면서 그 전쟁과 분쟁을 일으키는 쌍방의 입장을 가능한 한 중립적인 견지에서 보도하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적진 지역에서 한 탈레반 지도자와 인터뷰까지 했다. 시리아 정부군이나 반군이 장악한 두 지역까지 다 들어가서 전쟁의 참상과 피해를 샅샅이 보도 했다. 한번은 정부군 지역으로 들어가 유괴 당했다가 풀려나오기도 했다. 리비아 주미대사가 살해된 리비아 벵가지 지역에서는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위기도 당했으나 다행히 화를 면했다. 반미적 아랍의 적 진영에서도 그가 미국인이지만 비교적 공정한 보도를 하는 기자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해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과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을 돌아다니지만 그 싸움과 분쟁의 내막을 상세히 또는 올바르게 보도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의 대표적인 나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타흐르 광장에서 수십만 명의 군중이 모여 30년 무바라크 군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때 엥글은 광장에 나타나 이 상황을 보도했다. 민주주의 민선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므루시 대통령이 일년 만에 다시 군부에 의해 대통령 자리에서 축출 되었다. 지금 이 ‘아랍의 봄’ 광장 근처에서는 친 무루시 파와 반 므루시 파 시위대가 제각기 모여 서로 유혈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장한 군대는 친 무루시 데모를 해산시키기 위해 총을 쏘았다. 이 자리에도 엥글이 다시 나타났다. 시위진압 군인의 총에 맞아 부상당한 한 친 무루시 시위대원의 몸을 붙들고 있는 다른 대원들은 엥글을 향해 이 총을 쏜 저 무자비한 군인들을 고발하고 이 만행에 대해 정확히 보도해 달라고 아우성 쳤다. 사실 엥글은 친, 반 시위대 양 편에 서 있는 기자다. 그는 각 시위대의 입장을 보고 듣는 대로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시위대는 각자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다고 그에게 외치고 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무루시 자신이 임명했던 알시시 국방장관에 의해 대통령 권한이 박탈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무루시의 축출은 이집트 군부의 쿠테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집트는 친미적인 아랍 국가이다. 쿠테타라면 미국법 규정 때문에 미국이 이집트에 연간 20억불 가량 제공하는 원조를 중지해야 한다. 이슬람형제단의 절대 지지를 받고 있었던 무루시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난 일년 간 그의 대내정책에는 이 형제단의 요구를 많이 반영시켰다. 그러나 이것을 반대하는 여론도 생기고 또한 민생과 경제는 전보다 도리어 악화되어 일상생활이 더 어렵게 되었다는 반대 여론도 일어나 민심이 뒤끓게 되었다. 범야권을 위시하여 많은 반 무루시 군중들이 결국 반기를 들어 이번 사태를 몰고 오게 된 것이다.
미국도 이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고 아랍권의 중요 국가인 사우디도 알시시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리하여 이집트는 이 사태로 ‘아랍의 봄’ 대표 자리만은 내 놓게 되었지만 미국 등의 지원 하에 다시 자기 길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한 동안 정치, 경제 상황은 불안하게 요동 칠 수도 있다. 이슬람 형제단과 친 무루시 파가 큰 시위대를 결성해 군부에 완강히 대결하고 있으니 지금의 정황도 아주 불안해 보인다. 엥글이 아마 또 다시 찾아와 이 상황을 보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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