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한국 사람들처럼 역사를 중시하는 민족도 없는 것 같다. 최근 뉴스가 되고 있는 독도부터, 종군 위안부,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NLL 논란, 박정희의 친일 행적과 쿠데타, 전두환 재산 환수 등등 역사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뜨거운 관심과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 젊은 세대의 역사에 대한 거의 완전한 무지다. 명문대나 지방대, 대학생이나 졸업생을 막론하고 한국 근대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대 자녀를 둔 50대 가운데 자녀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자녀들이 한국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는 5.18 민주 항쟁도 모르고 5.16 쿠데타도 모르고 6.25 사변도 모르고 3.1절도 모른다.
어째서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까.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잘못된 교육 정책에 있다. 한 때는 너무나 당연히 모든 고등학생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쳐지던 한국사 교육이 약화된 것은 1996년부터다. 이 때부터 독립 과목이던 국사가 사회 교과 안에 통합됐고 2002년부터는 일주일 3시간 수업이었던 것이 2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중국의 동북 공정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 등이 불거지자 2007년부터는 다시 3시간으로 늘렸지만 2009년부터는 2.5시간으로 줄이고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꿨다가 최근 독도가 다시 이슈가 되자 다시 필수로 바꾸었다.
그러나 고교 과정에서 필수냐 선택이냐보다 중요한 것이 대입에 필요한 수능 시험에서 이것을 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다. 대입 준비가 거의 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학 입학 시험의 비중이 큰 한국에서 수능 때 국사를 택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면 아무리 학교에서 이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공염불과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고등학생 중 수능 때 국사를 선택하는 사람은 10% 미만이다. 2005년부터 한국사가 선택 과목이 된 후 이를 택하는 학생은 거의 사라졌다. 서울대 등 극히 일부 대학만이 이를 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지망생이 아닌 한 국사에 대해 공부할 이유도 여력도 없는 것이다.
이런 현행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교사들 모임인 한국 교원 단체 총연합회가 최근 초중고 대학 교원들을 상대로 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88%가 학생들의 한국사 인식 수준이 심각한 상태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의 63%가 한국사가 수능 선택 과목인 것이 그 이유라고 지적했다.
다행히 최근 이를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 교총은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고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대입 성적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반대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사회 과목 교사 교수 모임인 한국 사회과 교육학회는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공교육 와해와 사교육 팽창, 학생들의 과도한 부담 등을 이유로 내걸었지만 한국사만 필수가 될 경우 다른 과목들이 찬밥이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특정 집단의 공통된 기억이다. 한국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공동체 의식도, 과거의 교훈도, 지켜야 할 가치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좌표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이렇게 정책을 바꾼다 하더라도 대입 제도는 3년 전 변경을 예고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2017 학년도에나 한국사는 수능 필수가 되고 그 때서야 학생들도 한국사를 제대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늦더라도 아주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속담이 서양에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국민은 인터넷이나 SNS에 떠다니는 괴담에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나라라는 배를 암초에 처박기 십상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산타야나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되풀이 하는 벌을 받는다”는 경구를 남겼다. 비극으로 점철된 한국 역사를 우리 후대가 되풀이 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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