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쿠시에서 지중해까지. 아랍-이슬람권으로 불리어지는 그 광활한 지역에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양축으로 한 내전(內戰)의 바람이다. 그 최대의 격전지는 시리아다. 그 피 바람이 북아프리카지역까지 몰아칠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1년이 겨우 됐나. ‘아랍의 봄’과 함께 탄생한 이집트의 이슬람이스트 정권이 붕괴된 것이. 범국민적인 타마르루드(tamarrud-거부)운동이 벌어졌다. 거기에 군부가 가세해 사실상의 무슬림 형제단 정권인 무하마드 무르시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후 상황이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무슬림 형제단의 반격이 시작됐다. 유혈사태가 잇단 가운데 사우디아리비아가 쿠데타 정권을 적극지지하고 나섰다.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튀니지, 리비아, 예멘 등 이웃 국가들도 동요하고 있다. ‘아랍의 봄’과 함께 독재자가 축출됐다. 그 나라마다 정국을 주도해온 것은 역시 이슬람이스트세력이기 때문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오랫동안 비틀거리던 한 문명이 마침내 붕괴되는 상황을 세계는 목격하고 있다. 갈 때 까지 간 부패, 정체(停滯)속에 아랍 세계는 폭력적인 대변동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아랍문제 전문가 랄프 피터스의 진단이다.
“그 아랍세계의 정치지도는 점차 중세시대의 지도를 닮아가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의 지적이다. 국경을 경계로 한 나라의 주권이 명확히 행사된다. 중동지역 전체에서 그 같은 경우는 이스라엘과 이란, 두 나라 밖에 없다.
“국경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모호하다. 한 국가의 주권보다는 종파의 영향력이 더 크다. 이라크, 레바논 등이 그렇다. 지역에 따라 시아파지역, 수니파 지역으로 나뉘면서 국가공권력은 별 의미가 없다” 로버트 카플란의 말이다.
오토만제국 붕괴 후 영국과 프랑스가 자의적으로 그은 국경선, 그 국경선은 오늘날 점차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스테이터스 쿠오’ 파괴자는 이슬람이스트 세력이다.
마치 암세포 같이 번져나간다. 그러면서 전 아랍권은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아랍권 최대 인구국가인 이집트도 내란 상황을 맞게 될까 하는 것이다.
그 전망은 그렇다고 치고, 수니와 시아파의 대격돌, 그 큰 흐름에 가려 한 가지 간과되는 것이 있다. 기독교의 발상지 중동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기독교 박멸 사태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직전 바티간은 부시행정부에 특사를 보냈다. 전쟁이 가져올 참화를 경고했다. 바티칸이 우려한 것은 전쟁이 장기화될 때 찾아올 인종, 종교적 그룹간의 갈등이었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충고를 전달한 것이다. 그 충고를 부시행정부는 귓전으로 흘렸다.
그리고 한 달여.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더 심각한 갈등이 시작됐다. 이라크는 종파, 부족으로 나뉜 분파사회가 되면서 기독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이루어 진 것. 그 사태를 이라크 점령 미군은 외면했다. 정치와 종교분리라는 원칙하에.
고문, 납치, 강간, 인종 청소 등 박해를 피해 이라크 기독교도의 2/3는 외국으로 피신했다. 그 중 상당수가 피난처로 택한 곳이 이웃인 시리아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계속돼 왔다. ‘아랍의 봄’이후 박해는 더욱 가중됐다. 단순히 기독교도란 이유만으로 수십만의 사람들이 살해 된 것이다.
시리아의 기독교도는 200여 만에 이른다. 그들에 대해 보다 본격적인 박해가 이루어진 것은 내전 발발 이후다. 각 회교 원리주의 무장집단이 속속 시리아로 집결했다. 아사드 정권타도와 예루살렘 정복이 이들이 내건 목표다. 주둔지역을 일종의 ‘해방구’로 선언하면서 나름의 회교법령도 내건다. 기독교도 박멸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치러야 할 성전(지하드)이다.
십자가 문양의 액세서리를 달았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즉결처분된다. 가톨릭 수사가 납치돼 참수된다. 단지 기독교라는 이유로 맞아죽고 그 가족은 추방된다. 시리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독교 박해의 작은 사례들이다.
레바논, 이라크 등지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독교가 전 국민의 10%인 이집트에서도 고문, 강간, 납치, 방화, 테러, 살해 등 박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아니, ‘아랍의 봄’ 이후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인종청소’식 반(反)인륜범죄까지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나. “민주주의를 단지 독재자를 쫓아내고 선거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민주사회에 대한 지식과 기강의 기반이 없는 자유는 자칫 죽음의 댄스가 될 수 있다.” 한 역사학자의 지적이다. 그들의 멘탈리티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배타적 의식으로, 다양성은 물론이고 종교적 소수의 권리보호라는 개념도 아예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 말이다.” 내란 위기를 맞은 이집트 사태와 관련해 던져지고 있는 비관론이다.
맞는 지적일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모진 박해에 신음하고 있는 종교적 소수, 그들의 모습이 새삼 떠올려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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