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웃 보울 클래식 공연 개막
▶ 삶·죽음·부활의 장대함 감동에 못 미쳐
할리웃 보울 음악회를 한 번 다녀와야 LA의 여름이 비로소 시작되는 기분이다. 시원한 밤하늘, 기분 좋은 밤공기, 그리고 약간의 들뜬 대화와 적당한 취기가 흥을 돋우면 음악은 저절로 천상의 소리가 된다. 지난 9일 할리웃 보울의 2013 클래식 시즌이 마이클 틸슨 토머스 지휘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개막됐다.
틸슨 토머스는 11일에도 보울 무대에 올라 시벨리우스 바이얼린 콘첼토(길 샤함 협연)와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을 지휘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앞으로 석 달 동안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할리웃 보울에서는 다양한 클래식 프로그램이 연주된다. 구스타보 두다멜은 물론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초청돼 LA 필하모닉을 이끌며 우리를 고전으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의 갈피를 아우르는 음악의 세계로 데려간다.
약 20회에 이르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섭렵하면 다음과 같다. 놓치기 아까운 공연은 요하네스 모저의 엘가 첼로 콘첼토, 스트라빈스키의 ‘불꽃놀이’와 ‘봄의 제전’, 엘렌 그리모의 브람스 피아노 콘첼토 협연,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제니퍼 고가 협연하는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콘첼토 2번, 애덤스와 글래스의 현대음악의 밤 등이다.
할리웃 보울과 LA 다저스는 불꽃놀이가 있는 금요일 콘서트와 게임을 묶어서 티켓을 할인 판매하는 콤비네이션 티켓 패키지를 마련했다.
음악 좋아하고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할리웃 보울에서 열리는 8월16일의 차이코프스키의 밤(1812년 서곡)과 9월6일의 ‘블루 맨 그룹’ 공연 중에서 하나, 그리고 다저스테디엄에서 열리는 8월9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게임과 8월30일 샌디에고 파드레스와의 경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2장을 25% 특별 할인가인 40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티켓 문의 (323)850-2000, dodgers.com/hollywoodbowl
■ 공연리뷰
틸슨 토머스 지휘 말러 2번 교향곡 ‘부활’“오, 믿으라, 내 영혼이여! 그대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대의 존재와 고통은 모두 헛되지 않다. 태어난 것은 죽게 마련이고 죽은 것은 부활하리라! 오 고통이여, 나는 그대를 극복했도다! 오 죽음이여, 그대는 이제 정복되었다. 나는 쟁취한 날개를 달고 드높게 날아가리라!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내 영혼이여, 그대는 한순간에 부활하리라! 그리고 그대가 쟁취한 것은 그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리라!”삶의 불확실성, 종교적 회의 혹은 인성의 한계에 부딪쳐 방황할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삶과 존재, 나의 고통은 헛되지 않다고, 내가 쟁취한 날개를 달고 빛을 향해 오를 수 있다고… 50년 인생을 자신과 세상과 음악과 투쟁하며 살았던 구스타프 말러는 삶의 의미와 구원의 의문에 대한 답변을 2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거대한 합창을 통해 들려준다. 그가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한 ‘부활’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는 사뭇 다르다. 신에 의해 태어난 모든 것은 이유와 가치가 있으며, 모두가 죽음으로써 빛의 근원인 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말러 교향곡 2번을 라이브로 듣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많이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할리웃 보울이라는 야외음악당은 삶과 죽음과 부활을 노래한 장대한 말러 교향곡을 감상하기에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한 소절 한 소절에 자신의 생각과 영감을 쏟고 기과 혼을 불어넣으며 온 우주를 표현하려 했던 말러의 교향곡들은 사실 음향 좋은 콘서트홀에서 집중해서 들어도 충분히 감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는 야외에서 와인병 넘어지는 소리, 비행기 날아가는 굉음, 화장실 다녀오는 사람들, 얼굴로 날아드는 날파리들과 싸우며 들으려니 음악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할리웃 보울은 올해 음향과 영상 시스템을 최첨단 장비로 새로 개비했다고 하는데 예년에 비해 확실히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말러 교향곡을 연주할 수준은 아니었다. 새 영상 스크린은 너무 업그레이드 돼서 무대 위 오케스트라를 비춰줄 때 보면 실제보다 훨씬 선명하고 밝게 보였다. 액션이 있는 공연을 볼 때는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틸튼 토머스(Michael Tilson Thomas)의 연주가 조금 싱거웠던 것도 실망의 요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상임지휘자인 MTT는 이번 연주를 앞두고 클래식 방송 KUSC와의 인터뷰에서 “틴에이저 시절 말러 2번을 들었을 때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나의 음악적 삶은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로 나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말러 2번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지만 최근 SF 심포니와 말러 전곡 음반을 마쳤다는 MTT의 말러 2번은 어떤지,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라이브의 감동 외엔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교향곡 2번은 죽음과 삶의 거대한 투쟁을 그린 1악장과, 최후심판의 아비규환과 부활의 아름다움이 대조적으로 펼쳐지는 5악장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이어주는 2, 3, 4악장에서 점진적으로 기운을 올려가며 마지막 피날레에서 카타르시스를 창출해야 하는데 야외음악당의 한계인지, MTT의 한계인지, LA필의 한계인지, 잔뜩 가졌던 기대가 불완전 연소된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
메조소프라노 사샤 쿡의 솔로는 너무 아름다웠으나 소프라노 키에라 더피는 말러적 정서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오직 매스터코랄만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게 부활을 노래함으로써 마지막 몇분 간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대편성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음향의 감동과 위력 때문에 2번 피날레에서는 종종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눈물이 북받쳐 나오곤 하는데 이번에는 좀 맹숭맹숭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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