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7월1일 펜실베니아의 작은 마을 게티스버그는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무더위가 짓누르고 있었다. 이 마을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무더위만이 아니었다. 조지 미드가 이끄는 9만3,900명의 북군과 로버트 리가 이끄는 7만1,700명의 남군이 이 마을 인근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 시대 최고의 명장이었다. 이 전투에서 북군의 주력을 섬멸하고 미국 독립의 요람인 필라델피아까지 진격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의 작전대로만 된다면 남부동맹의 독립은 기정사실이었다. 그와 함께 400만에 달하는 흑인 노예의 해방도 물 건너 갈 것이 뻔했다.
링컨은 일찍부터 남부와 타협하라는 평화주의자들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남부가 떨어져 나가든, 노예제를 유지하든 그건 남부 주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고귀한 젊은이들의 생명을 희생해가면서 막을 일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숫자상으로 보면 북군의 승리는 당연했다. 주 숫자로는 23대 11, 인구로는 2,100만 대 900만, 철강과 철도 등 산업으로 보면 90대 10이라는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남부도 나름대로 강점이 있었다. 그 중 첫째가 무관 존중의 전통이다. 당시 미국에 존재하던 8개 군사학교 중 7개가 남부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양키들로부터 지키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다. 남북전쟁은 물론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장군의 하나로 꼽히는 로버트 리는 미합중국 군인으로 남아 있으면 보장됐을 출세를 버리고 사직서를 낸 후 남부군에 가담했다.
1861년 4월 남북전쟁이 발발한 후 리는 연전연승을 거듭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북군의 주력 부대를 격파하기 위해 게티스버그로 온 것이다. 전투의 첫날인 1일 싸움은 리의 승리로 돌아갔다. 리는 다음날 여세를 몰아 총공세를 폈으나 북군은 방어선을 지켰다. 마지막 날인 3일 리는 정예 1만2,500명을 투입, 조지 피켓 장군 지휘로 북군의 정면 돌파를 명령했다.
그러나 북군의 병사들은 방어선을 사수했고 남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남부 독립의 꿈도 사라졌다.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게티스버그가 남북전쟁의 터닝포인트로 불리는 이유이다. 사흘간의 이 전투로 2만3,000명의 북군 사상자와 2만3,000명의 남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8년간 계속된 미 독립전쟁의 미군 사상자가 5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날 전투의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게티스버그는 이 날 전투에 못지않게 링컨의 연설로 유명하다. 이 전투가 끝난 후 북군은 희생자들을 서둘러 묻었지만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시체들이 땅 위로 나와 썩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했다. 이를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판단한 연방 정부가 여기 공동묘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묘지 개장식을 하면서 링컨 대통령을 불렀다.
이날 행사의 주 연설자는 당대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베렛으로 그는 2시간이 넘는 연설을 해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주최 측은 링컨이 오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는 왔고 기차 안에서 작성한 원고로 2분짜리 짧은 연설을 했다. 너무 짧아 청중들은 연설이 끝난 줄도 몰랐으며 반응도 신통치 않았다. 링컨도 자신의 연설이 실패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설의 진가를 알아본 에베렛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다음날 연설 내용이 신문에 게재되면서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지금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미 건국이념을 천명한 ‘독립선언서’에 버금가는 정치문서로 평가 받고 있다.
“87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유 안에서 잉태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나라를 이 대륙에 탄생시켰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탄생된 나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커다란 내전에 휩싸여 있다… 세상은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에 주의도 하지 않고 오래 기억도 않겠지만 그들이 여기서 한 일은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가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맞을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상에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굳게 결의한다”는 그의 연설은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게티스버그 전투 발발 150주년을 맞아 노예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과 그 희생의 역사적 의미를 천명한 링컨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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