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결혼한 동성부부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위헌이다…그러나 ‘동성애자의 결혼은 합법적인가, 동성결혼 금지법은 위헌인가’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릴 때가 아니다” - 미 전국의 지대한 관심과 오랜 기다림 끝에 26일 드디어 내려진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관련 두 가지 판결의 의미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렇다. 대법원은 여론의 시대적 변화를 충분히 인식하고 반영은 하지만 뜨거운 논란에 깊이 빠져들지는 않겠다는 중도적 노선을 택한 것이다.
이날 먼저 나온 판결은 연방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에 대해 딱 떨어진 위헌 결정이었다. 결혼을 남자와 여자, 이성간의 법적인 결합으로 규정하고 동성커플에 대해선 부부에게 주어지는 복지혜택을 거부해온 이 법을 무효화시킴으로서 대법원은 “합법적으로 결혼한 모든 사람은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연방정부에 의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지난해 대선후보로는 처음 동성결혼 공개지지를 선언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 중인데도 즉각 환영성명을 발표하고 조속한 시행을 위한 방안마련을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대법원 판결이 시행에 들어가면 동성커플에게도 부부로서의 연방 혜택과 의무이행이 동시에 적용될 것이다. 소득세 공동보고를 하면서 세금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유산상속권에서 소셜시큐리티 베네핏, 직장의료보험 가입 등 1,000여개에 이르는 혜택을 보통부부와 똑같이 누릴 수 있게 된다.
‘합법적으로’ 결혼한 경우에 한해서다. 그리고 ‘결혼’ 규정은 주의 고유영역이다.
현재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는 곳은 12개주와 워싱턴 DC뿐이다. 30여개 주에선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동성결혼이 금지된 주에 거주하는 동성커플은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방혜택을 받을 수 없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는 ‘불평등’이 계속되면 연방법의 동등한 보호를 요구하는 소송이 봇물을 이루면서 혼란이 야기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실 연방대법원은 이 같은 혼란을 예방할 명쾌한 해답도 이번에 줄 수 있었다. 동성결혼을 금지시킨 캘리포니아 주 프로포지션 8의 무효화에 대한 소송에서다. 연방지법과 항소심에서 ‘위헌’으로 무효화 판결을 받은 케이스다.
그러나 이 케이스를 통해 묻는 ‘동성결혼 금지법은 위헌인가’라는 질문에 대법원은 대답을 유보했다. 결혼보호법 판결에선 동성 간의 결혼도 “정부가 침해할 수 없는 각 개인의 기본권”이라고 적극 옹호했으면서도 “동성결혼은 합법적인가”에 대해 대법원의 의견을 묻는, 보다 근본적 이슈에 대한 판정은 피해갔다.
프로포지션 8 케이스의 원고가 소송을 제기할 법적 자격이 없다고 지적하며 하급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2008년 주민투표로 통과된 동성결혼 금지법은 동성애자들로부터 위헌소송을 당해 연방지법에서 패소한 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법적 방어를 포기하자 프로포지션 8을 지지해온 일반 시민들이 항소를 제기하며 연방대법원까지 올라왔었다. 직접 피해당사자가 아닌 ‘일반시민’이 자기가 지지하는 법 시행을 위해 소송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사실상 기각이며, 프로포지션 8을 ‘위헌’으로 무효화시킨 연방지법의 판결에 대한 지지로, 이에 의해 캘리포니아 내 동성결혼은 합법이 되었다.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이 아니어서 전국적으로 동성결혼 합법화는 아직도 요원하지만 동성애자 권익운동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 하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승리’로 이제 미국인의 30%가 동성결혼 합법화지역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환호하는 그들의 표현대로 “그랜드 슬램은 아니어도 홈런은 틀림없다!”지난 몇 년 확실하게 보수화된 대법원이 ‘동성애자 권익투쟁에 역사적인 승리’를 안겨준 판결을 내리게 된 가장 큰 배경은, 같은 지난 몇 년 뚜렷하게 나타난 여론의 변화일 것이다. 결혼보호법이 제정되던 1996년 27%에 머물렀던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도는 지난 4월 53%로 과반수를 넘어섰다. 반대도 42%로 아직 완강하지만 대부분의 반대자들도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도 공화당의 딕 체니 부통령도 동성결혼 공개지지를 선언하고, 군복무 규정에도, TV와 영화, 스포츠와 음악에서도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스타의 동성결혼 발표가 ‘스캔들’이 아닌 ‘명사의 뉴스’가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변화 물결의 단면을 전하고 있다. 미국인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그 물결에 휩쓸려 이제 연방대법원도 변화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프로포지션 8의 위헌소송을 제기했던 동성커플은 대법원의 판결 뉴스를 듣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우리가족도 다른 가족들 못지않은 굿 패밀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것은 누구나가 누릴 수 있어야 할 소박한 행복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다양하게 내세우는 대의명분에 자칫 침해당할 수 있는 기본인권의 보호는 사회가 함께 지켜 가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이번 판결은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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