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 It’s a Wonderful Life)은 가장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의 하나다. 1946년 나왔을 때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미 영화협회는 이 작품을 ‘가장 위대한 영화 100개’ 중 하나로, 가장 감명 깊은 영화로는 첫번째로 선정한 바 있다.
주인공은 뉴욕의 한 소도시에서 작은 은행을 하는 조지 베일리다. 어렸을 때 동생을 익사 직전 구하는 등 좋은 일을 하며 살아온 베일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자살을 결심한다. 삼촌의 실수로 은행에 입금되어야 할 돈이 사라져 은행은 부도가 나고 자신은 감옥에 가게 됐기 때문이다.
다리에서 강으로 떨어져 죽으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그가 태어나 지금까지 한 일을 상기시키며 그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훨씬 나쁜 곳이 되었을 것임을 보여준다. 베일리가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가 경찰에 잡히려는 순간 마을 사람들과 친구가 돈을 모아줘 은행도 살아나고 그도 새 삶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방영돼 ‘미국의 크리스마스 캐롤’로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에는 미국의 금융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200여년 전 나라가 생긴 이래 미국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1913년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생기기 이전까지 불황은 거의 예외 없이 ‘뱅크 런’(bank run)으로 시작됐다.
‘뱅크 런’이란 은행에서 돈을 찾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은행으로 뛰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은행에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 돈을 달라고 하면 은행에는 줄 돈이 없다. 소위 ‘부분 예치금 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 때문이다. ‘부분 예치금’이란 은행이 고객이 맡긴 돈을 모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금고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기업이나 개인에 대출해주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야 은행도 예금과 대출 이자 차이로 먹고 살 수 있다.
보통 때는 이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고객의 은행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내 돈을 찾겠다고 너도나도 달려가면 은행은 정말 문을 닫고 기업도 줄줄이 도산한다. 이것이 FRB 이전까지 미국의 금융 역사였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심해져 소위 ‘1907년의 패닉’ 때는 나라 전체가 패닉에 삐졌다. 월가에서 ‘유나이티드 카퍼 회사’의 주가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면서 뉴욕 세번째 투자회사인 니커바커 트러스트가 문을 닫았고 이는 은행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당시 최대 금융가였던 JP 모건이 구제 금융 자금을 내놔 문제를 해결했지만 차후 이런 사태가 재발한다면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중앙은행을 만들기로 하고 그 결과 FRB가 탄생한 것이다. 중앙은행과 금융 위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1929년 증시 폭락과 함께 또 다시 뱅크 런이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돈을 충분히 풀어 은행의 줄도산을 막아야 하는데 이에 실패하는 바람에 은행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대공황이 최악이던 1933년 한 해에만 4,000개의 은행이, 30년대에는 1만개에 달하는 은행이 폐업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 역사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바로 현 FRB 의장으로 있는 벤 버냉키다. 그는 이 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듯 2007년 금융 위기가 시작되자 금리를 사상 최저인 0.25%까지 내리고 ‘양적 완화’(QE)라는 이름으로 수 조 달러의 돈을 풀었다. ‘양적 완화’란 모기지 채권이나 연방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이다.
버냉키가 작년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3차 양적 완화를 경기가 회복되면 중단하겠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한 후 전 세계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그럼 구제 금융을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구제도 적당히 해야지 중단 시기를 놓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2000년 하이텍 버블이 붕괴하자 당시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팬은 금리를 1%선까지 낮추는 식으로 대응했다 인상시기를 잘못 잡는 바람에 부동산 광풍을 불러 일으켜 2007년 금융 위기를 유발했다. 과연 버냉키가 그린스팬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지 지대한 관심거리다. 미국은 물론 세계인의 생계가 거기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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