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 며칠 전에 시작돼 9월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제임스 ‘와이티’ 벌저 2세의 재판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벌저는 83세가 채 못 되는 사람인데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사우스 보스턴에서 조직폭력단의 두목 노릇을 하는 동안, 한 동료에 의하면 40명을 죽였거나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지만 연방 검찰에 의해 19건의 살인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중이다.
그런데 마치 마피아 두목들이 각종 흉악 범죄로 사회의 지탄과 사정당국의 추적을 당하는 반면에 그들이 살고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 잘하는 유지(?)처럼 대접을 받는 경우와 같은 현상이 벌저에게도 적용되는 상 싶다. 그가 살던 사우스 보스턴에서는 그를 동네와 주민들을, 예를 들면 마약밀매 조직폭력배들로부터 보호하는 ‘로빈훗’과 같은 인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묘한 일은 1975년경부터는 벌저가 연방수사국(FBI)의 비밀 첩보원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태리계 범죄단체 파트리아카 집안의 내부 정보를 물어다주었기 때문인지 연방수사국은 벌저의 범죄조직을 수수방관하다시피 했단다. 1994년 말에는 벌저를 다루던 연방수사국 요원이 벌저에게 곧 연방검찰의 기소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에 벌저는 도주를 해버렸다. 연방수사국의 최악범죄 도피자 10명의 명단에 벌저의 이름이 나온 것만도 12년이나 될 정도로 그는 무려 16년 동안이나 자신의 걸 프렌드와 함께 법망을 피해올 수 있었다.
연방수사국의 최악 도피자 10명의 사진이 TV에 방영된 지 얼마 후인 2011년 6월에 벌저는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의 어떤 아파트 밖에서 체포된 다음 중무장한 연방호송대에 둘러싸여 보스턴의 연방법정으로 이관되는데 얼마나 소란스러운 사태였던지 보스턴 항만시설의 일부가 문을 닫았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권총 등 여러 무기와 십만 달러가 넘는 현찰이 발견된다. 캐서린 그리그란 그의 걸 프렌드는 도망범 은닉혐의와 신분도용 사기혐의 등에 유죄를 자인해 8년형을 선고받았다.
벌저 자신의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는 ‘존 마토라노’란 범죄단체의 살인전담자가 등장했다.
자기 자신이 20명을 살해했노라고 하면서도 벌저의 지시가 있어서 그랬거나 벌저도 동참했다는 주장을 태연자약(?)하게 했다는 보도들이고 보면 양심이 마비된 인면수심의 사람일 것이다.
AP 보도의 더 기막힌 내용으로는 그가 ‘살인 전담자’라는 책을 쓴 저자에게서 7만 달러 그리고 영화제작회사로부터 선불로 25만 달러를 받았고 영화가 완성되면 25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 좋은 콘도에 살면서 벤츠차를 몰고 다닌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 기막힌 것은 검찰과의 현상으로 20건의 살인을 고백하고도 12년 형기를 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대신 벌저와 같은 옛 동료들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는 번거로움(?) 정도를 감수해야 된다. 사람 한명을 죽이고 종신형을 받는 피고들과 비교해보면 사법정의의 들쑥날쑥한 모순을 볼 수 있다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19건의 살인혐의자 및 도망자로 악명 높은 벌저를 보고 그 집안이 개판일 것으로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벌저의 일곱 살 아래 동생인 윌리엄 ‘빌리’ 벌저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오랫동안 주 상원의장을 지냈던 정치인 겸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빌리 벌저는 군대갔다온 다음 보스턴 칼리지를 졸업하고 법과대학으로 진학해 변호사가 되었다. 1961년에 매사추세츠 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들어갔고 1970년에는 주 상원의원이 된다. 1978년에는 주 상원의장으로 뽑힌 다음 매 2년마다 재선되어 1996년까지 재임했기 때문에 최장기 상원의장이라는 경력이 있다. 상원을 떠난 것도 매사추세츠 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리 벌저도 형이 도망범이 된 다음 전화 접촉이 있었고 연방수사국의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악재로 작용되어 미트 롬니가 주지사 시절이었던 2003년 9월에 총장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연방 정부, 주, 그리고 시의 사정당국이 범죄 혐의자들을 색출하여 사회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와이티’ 벌저를 둘러싼 일부 수사관들의 행각은 물론 불법을 저지르는 일들이었다. 그런 일들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기 때문에 각 기관마다 감찰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때때로는 내부 고발자들의 역할 및 매스 미디어의 심층조사와 폭로가 사회정화에 일조한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인간제도 아래서는 역사가 계속 반복된다. 벌저 형제들의 천양지차의 인생행로는 아마도 두 사람이 어렸을 적에 사귄 친구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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