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하고 시작되는 엘리오트(T.S. Eliot)의 장편시 황무지(TheWaste Land)는 433행이나 되는 길고도 난해한 詩였다. 나는 대학교 때 이 시를 참으로 지루하게 읽었는데 시의 도입 부분으로 인용한 제사(題辭) 만을 지금까지 감명 깊게 기억한다. 바로 쿠마의 무녀(巫女)이야기이다.
“나는/내 눈으로 보았어/쿠마의 무녀가새장 안에 있어/매달려 있는 것을..” 쿠마에 사는 시빌이라는 무녀가 아폴로 神의은총을 받아 영원한 생명은 얻었지만 이와 함께 젊음까지 얻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살긴 살았어도 몸은 점점 늙고 쫄글어져서 나중에 새장에 들어가 살 정도로 작아 젔다는 전설이였다.
“.. 소년들이 그녀에게 물었지/무녀야 너는 뭘 원해?/그녀는 대답했어/죽고 싶어..”원하던 영생을 얻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영생을 얻은 다음의 소원은 다만 죽고싶은 것뿐이였다.
그런데 엘리오트가 인용한 <쿠마의 무녀>는 로마 네로 황제의 총신(寵臣)이였던 페트로니우스라는 사람이 쓴 소설 사티리콘(Satyricon:라틴어로 풍자극이라는뜻)이 그 출처가 된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다. 그래서 페트로니우스가 누구인가 찾아보니 쿼바디스(Quo Vadis)에서 남자 주인공 마커스의 아저씨로 나오는 극중의실존 인물이란다.
당시 네로 황제의 신임을 받아 집정관과 비튜니아 속주의 총독을 지낼 정도로잘 나가던 사람인데 AD 66년 네로의 폭정을 비판한 것이 정적들에게 들추어지고, 게다가 네로의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된 혐의까지 인정되어 재산은 몰수되고본인은 참살 되었다.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가 주연했던 영화 쿼바디스 (1951)는 지금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작(大作)이고 명작 이였지만 사실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의 원작 소설을 너무많이 각색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페트로니우스는 조연급으로 영화 중간 쯤에서 자살하는 것과 달리 원작 소설에서페트로니우스는 대하(大河)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실제 주인공이다. 조카 마커스와 그가 사랑하는 리지아 공주를 시실리까지 피신을 시키고 모든 일을 다 마무리한 다음 자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자칭 불세출의 예술가 네로가 황제이던당시의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표현되는 제국의 최고의 황금기,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나라 경제가번영하는 만큼 새로운 부유층이 늘어 로마의 상류 사회로 진입하고, 그 틈새에서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탐욕과 허영이 팽배하고, 따라서 사회는 부패와 타락이 만연할 때였다.
소설에서 작가는 엔콜피우스, 아스킬투스, 기튼이라는 아주 평범한 세 사람을 등장시켜서 이 사람들이 갈리아에서 남부이탈리아와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보고듣고 겪는 이야기를 각기 짧은 에피소드형식으로 나열하였다.
시리아 태생의 해방 노예 출신으로 벼락 부자가 된 트리말키오를 통해 보여준천민자본주의, 남편 따라 죽겠다고 그 무덤에서 단식을 하다가 그만 애인이 생기고 그 애인을 구하기 위해 남편 시체를십자가에 매달은 열녀, 그 외에도 사이비종교인, 얼치기 시인, 허풍쟁이 등.., 페트로니우스는 소설 사티리콘을 통해서 네로황제의 폭정과 그의 난잡한 사생활 ,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실종된 그 시대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풍자한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로마의 역사가 타카투스(AD 55-117)에 의하면 페트로니우스는 잘 생긴 용모에 취향이 아주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의 글은 그런 평판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냥 자유스럽기만 하다. 당시의 세태(世態)있는 그대로 묘사하다보니 별별 음탕하고저속한 표현이 많은 것이다.
사티리콘을 읽으며 2천년 전의 페트로니우스와 만난다. 내가 그에게 게 묻는다.
“과학 문명이 이렇게 발달하고 사회가 이정도 발전했어도 사람들의 탐욕과 허영과부패와 타락은 아직도 여전해요.” 그가 대답한다. “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본성은 절대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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