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과 볼티모어를 잇는 295번 프리웨이 남쪽 방향에는 ‘국가 안전국(NSA) 직원에 한함’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는 출구가 있다. NSA 직원이 아닌 사람이 여기로 내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거나 기타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면 즉시 NSA 경비대가 출동, 연행해 간다. 이 경비대의 별명이 바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Men in Black)이다.
설사 이들을 따돌리더라도 NSA 본부에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조망과 보안 카메라가 겹겹으로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비밀의 도시’(Crypto City)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NSA 콤플렉스에는 60여개의 빌딩과 1만8,0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여기까지는 구글 위성으로 불 수 있지만 외부인이 알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 첩보 기관인 NSA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다. 수십 년 간 이 기관을 연구해 ‘퍼즐 팰리스’ ‘비밀의 기관’(Body of Secrets)이라는 책을 낸 이 분야 전문가인 제임스 브램포드에 따르면 이곳 1년 예산은 수십 억 달러에, 일하는 직원 수는 3만8,000명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2001년 숫자니까 지금은 훨씬 늘었을 것이다.
여기서 일하려면 목사 일을 하는 사람도 일반 정부 기관 1급 비밀 취급자보다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컴퓨터 중 가장 성능이 좋은 것도 모두 여기 모여 있다. 2001년 초당 10억에 10억을 곱한 데다 다시 100만을 곱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1초의 10억분의 1에 다시 100만분의 1을 곱한 펨토 세컨드라는 극미의 시간별로 자료를 뽑는 곳이 여기였다. 지난 10년 간 컴퓨터의 진화를 생각하면 지금 NSA의 계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런 NSA도 시작은 미미했다. 1930년 워싱턴의 한 창고 같은 건물에 25평방피트 넓이의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3416호 실로 불린 이 ‘기호 정보실’ 책임자는 러시아 태생 이민자인 윌리엄 프리드먼으로 부하라고는 대학을 갓 졸업한 세 명 뿐이었다.
그는 6월의 어느 날 이들을 이 방으로 부른 후 지난 10년간 ‘검은 방’으로 불리는 육군 암호 해독실에서 일하며 혁혁한 공을 세운 허버트 야들리가 어떻게 “신사는 남의 편지를 읽지 않는다”를 신조로 내세운 스팀슨 국무장관에 의해 파면 당했는지를 설명하고 이 방의 존재 여부를 다른 정부 관리들에게까지 절대 비밀로 하라고 당부한다. 이처럼 미미하게 출발한 ‘기호 정보실’은 제2차 대전과 6.25, 냉전을 거치며 정보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자 이제는 NSA로 이름을 바꿔 CIA와 FBI를 압도하는 정보의 본산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난 주 이 NSA가 모든 미국인의 통화기록을 조사해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워싱턴이 시끄럽다. 이는 ‘외국 정보 감시법’에 따라 비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집행한 것이라 법적인 문제는 없고 정보 당국은 통화 내용까지 도청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무런 범죄 경력도, 의심 갈 일도 없는 사람의 통화 기록을 정부가 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티파티와 좌파 리버럴이 이 문제에 관한한은 보조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양도 이채롭다.
지금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뉴욕타임스는 사설로 이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이 문제에 관해 모든 신뢰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연방 상원의원 시절 ‘애국법’에 의한 테러 방지 목적의 광범위한 감청을 비판해 왔으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테러 방지를 위해 이는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도청 및 감시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테러 방지를 위해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정부에 이런 방대한 권한을 줬을 때 이것이 악용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까지 정부에 감시권을 주며, 누가 어떻게 정부를 감시할 것인지,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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