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TV 시사토크쇼는 한마디로 ‘홀더 때리기’ 퍼레이드였다. 5월 중순부터 불거진 오바마 대통령의 3대 악재 중 ‘언론 사찰’의 중심에 선 에릭 홀더 법무장관에 대한 비판이 사임 예상으로, 예상이 사임 촉구로 확대되면서 홀더의 퇴출을 재촉하는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북을 두드려대는 것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이다. CBS에 출연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법무장관은 현 상황에서 자신이 대통령과 국민을 위해 과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고 그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극단적 표현은 피해갔지만, 대럴 아이사 하원감독위원장은 CNN에서 홀더의 청문회 증언을 ‘거짓말’로 간주하면서 “위증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마샤 블랙번 하원의원은 NBC에서 “홀더는 미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개탄했고, 폭스와 인터뷰한 피터 킹 하원의원은 “내가 홀더라면 사임하겠다”는 조언까지 했는가 하면, 밥 굿래트 하원법사위원장은 홀더의 위증여부에 대해 “의회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홀더의 사임을 원하는 것은 목청을 높이는 공화당만은 아닌듯하다.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홀더를 두둔하고 있지만 2일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 “웨스트 윙의 일부 참모들은 홀더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발생을 예견하지도 못하고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해 계속 사안을 키워가는 홀더의 둔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역량 부족에 벌써 오랫동안 “졸도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백악관 일각에서 홀더를 ‘부담’으로 여긴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스캔들이 터졌을 때 타겟 공직자 퇴출 등 “워싱턴이 사태를 수습하는 통상 2단계 중 한 부분”이라고 해석해준 원로 앵커 NBC의 톰 브로커는 “홀더가 더 이상 머물 수 있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위증’ 논란의 시작은 5월15일 홀더가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두하면서다. 국가기밀 유출 조사과정에서 AP통신 기자들의 통화기록을 압수한 법무부의 언론사찰 의혹에 관해 증언한 홀더는 “문서 유출에 따른 언론기소 여부는 내가 관여한 적도, 들은 적도, 현명한 정책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 사안이다. 나의 견해는 그와는 정 반대다”라고 단언했다. 선서 하에 증언이었다.
그런데 증언직후 2010년 법무부가 북한관련 기밀정보 유출사건을 조사할 당시 폭스뉴스 기자의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신청을 홀더장관이 승인했으며 그 기자의 통화기록 소환결정도 그가 직접 승인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졸지에 보수미디어 폭스의 기자는 언론사찰의 ‘순교자’가 되었고 홀더는 하나의 진실에 대해 증언과 승인을 통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펼친 ‘위증’ 혐의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가뜩이나 공화당 의원들과 홀더는 사이가 껄끄럽다. 법무부의 실패한 무기밀매 함정수사 사건과 관련해 의회가 요구한 관련자료 제출을 홀더가 거부하면서 작년 6월 공화주도 하원은 법무장관에 대한 ‘의회모독 혐의’를 압도적 표결로 가결시킨바 있다. 사실 지난 연말 사직을 고려했던 홀더가 유임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당시의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더 큰 난관에 직면한 것이다.
공화당의 장담대로 의회조사야 진행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위증’ 결론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국민의 법무장관에 대한 신뢰, ‘투명한 정부’에 대한 기대가 추락한 것만은 사실이다. 또 정적들에게 좋은 빌미를 준 그의 ‘발언’이 오바마와 민주당에게 어떤 ‘부담’으로 덮쳐올지 도무지 편치 않은 게 요즘 백악관 참모들의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최초의 흑인 법무장관 홀더가 사면초가의 신세는 아니다. 백악관엔 홀더를 적극 편들어주는 파워가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막강한 두 흑인 여성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밸러리 재럿 선임고문은 언제나 홀더의 ‘백악관 내 보호자’였고, 퍼스트 레이디 미셸은 홀더의 부인 샤론과 절친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의 영향력도 아직은 홀더에 대한 오바마의 신임과 지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잇닿는 스캔들의 한 복판에서 온몸으로 비판을 감당하고 있는 홀더가 대통령에게 쏟아질 분노와 조명을 막아주는 피뢰침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시각도 있고 어제 오늘 퇴출 임박의 북소리가 잦아들면서 홀더를 둘러싼 먹구름이 조금 걷힌 듯 보이기도 한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이었던 시절 그는 부시의 법무장관 지명자 앨버트 곤잘레스 인준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말했었다 : “곤잘레스가 자신의 역할을 국민의 법적 대리인이 아닌 대통령의 법적 대리인으로 생각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지금은 오바마가 부시에게 들이댔던 그 엄격한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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