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상원의 포괄적 이민개혁안은 별로 다치지도 않고 크게 바뀌지도 않은 채 첫 시험대를 무난히 통과했다. 공화당의 반대를 막기 위해 동성파트너 권리보장 수정안을 철회하고, 공화당이 원하는 고숙련 전문직 비자 대폭 확대 수정안을 받아들이는 민주당의 양보로 지난 주 법사위에서 개혁안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의회는 한 주간의 노동절 휴회에 들어갔다.
수백개의 수정안과 보수의 강경 비판으로 소란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이민개혁의 한 고개를 넘은 후 안도의 숨을 고르던 지난 연휴, 두 가지 보도가 주목을 받았다 : 로이터 통신의 “이민개혁안은 공화주도 하원에서 죽게 될 것인가”와 ABC 뉴스의 “만약 오늘 표결했다면 이민개혁안은 하원에서 부결되었을 것이다”오랫동안 기다려온 이민법 개혁의 실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최대 난관인 하원 통과에 대한 우려가 점점 강하게 체감되는 워싱턴의 분위기를 반영해준다.
“만약 오늘 표결했다면…”은 UC 샌디에고 톰 웡 정치학교수의 예상이다. 막연한 의견이 아니라 7년간의 광범위한 연구조사에 근거한 분석의 결과다.
그는 첫 단계로 미 전국에서 수백만 이민자들의 시위가 열렸던 2006년 이후 모든 의원들의 이민법안 투표 기록과 실업률·교육수준·인종구성 등 각 선거구의 특성, 이민관련 데이터들을 종합해 각 의원들의 투표성향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고 2단계로 계속 이 모델의 예측 정확도를 측정해 왔다. 하원에선 94%, 상원에선 90%로 나타났으니 이만하면 상당히 정확하다.
이 모델을 통한 연방 상하원 535명 현역의원들의 이번 포괄적 이민개혁안에 대한 웡 교수의 5월말 현재 찬반예측은 “상원에선 67~71명 찬성, 하원에선 203명 찬성”이다. 그의 예측이 맞을 경우, 어렵게 초당적으로 합의를 이루어온 포괄적 이민개혁안이 만약 오늘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졌다면 15표가 모자라 죽어버렸을 것이다.
로이터의 보도는 공화당 지도부의 포괄적 개혁안에 대한 공개적 지지입장과 달리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반대가 왜 그렇게 강경한가를 짚고 있다.
하나는 어떤 설명으로도 설득당하지 않는 ‘사면’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이다. 아무리 긴 기간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해도 이들에겐 서류미비자의 시민권 취득은 ‘위법자를 포상하는 사면’일 뿐이다. “내 양심상 불법행위 승인에 지지표를 던질 수는 없다.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원칙을 뒤엎는 일이다. 난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는 모 브룩스의원(앨라배머)의 발언이 폭넓게 퍼져있는 공화당 하원의 정서를 대변한다.
다른 하나는 개혁안을 지지해야 라티노 표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도부의 방침에 대한 상당수 공화의원들의 불신이다. 초당적 이민개혁안을 공동작성하고도 2008년 대선에서 라티노 지지를 얻지 못했던 존 매케인을 보라고 반격한다.
더 큰 요인은 대부분의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각자 선거구에서 라티노 지지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하원 공화당 선거구민은 평균 75%가 백인이다. 이중 186개 선거구는 공화당 절대 우세지역이다. 현역 공화당 하원의원의 80%가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경선만 통과하면 당선이 보장된다.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 응답자의 52%는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반대한다. ‘사면안’에 지지표를 던지는 공화의원 낙선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한 강경보수 수퍼팩도 이미 가동을 시작했다.
장기적인 당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국가 이익을 위해 포괄적 개혁안 통과를 원한다 해도 자신의 낙선 위험을 감수하며 앞장 서 지지표를 던질 공화당 의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원안이든 아니면 하원에서도 초당적 8인방이 작성 중인 자체적 개혁안이든, 하원통과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결단에 희망을 걸 수 있다. 현재의 하원은 공화 233명, 민주 201명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민이슈에서 분열된 공화당만으로 과반수 218표를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당의 전폭 지지에 공화당 20~30표를 끌어 모아 통과시키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공화당 하원 현역 중 자신의 선거구에서 라티노 유권자가 20%이상인 39명의 의원이 적절한 포섭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베이너 의장이 재정절벽 표결 때처럼 민주당과 손잡고 포괄적 개혁안 지지에 나선다면 가능성은 한결 높아진다. 그러나 베이너에겐 정치생명을 거는 도박이 될 수도 있다. “다수당의 과반수가 지지하지 않는 법안은, 설사 소수당과 다수당의 소수가 협력해 통과시킬 수 있다 해도 본회의 표결에 부치지 않는다”는 하원의 불문율인 해스터트 규정을 또 어기게 되어 당내의 강한 반발에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출신 이민자로 자신이 불법체류자임을 알게 된 16세 때의 암담함을 기억하는 웡 교수도 개혁추진 운동가들을 돕고 있다. 그의 예측모델에 나타난 선거구의 인구분포 변화 등을 근거로 설득할 경우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뀔 수 있는 의원들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설득당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오늘 투표한다면 ‘죽을’ 운명인 개혁안이 몇 달 후엔 ‘통과’라는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 역사창조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다. 해야 한다. 다음 주 한인을 비롯한 아태계 이민자단체들이 워싱턴DC에서 개혁안 지지행사를 개최한다. 함께 갈 수는 없다 해도 온라인을 통해 연방의원들에게 지지촉구 서한을 보내는 간단한 수고만으로 힘을 보탤 수 있다. 이민자로서 우리 모두의 최소한 의무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한참 이민법개혁은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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