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day of liberation you will laugh,but what is on the day of laughter is now.
해탈(解脫)의 그날그대는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웃음의 그날 있는 게바로 지금(至今) 있다.
--------------------------------------------
사람은 영묘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영의 존재입니다.
영(靈)이란 신기하고 묘한 존재입니다. ‘영(靈)’이란 동방문자엔 사람을 뜻하는 부호(?)가 무려 여섯이나 들어 있습니다. 삼신(三神)이 두 번이나 또렷하게 강조되고 있음입니다. 그렇게, 사람이란 존재는 분명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영(靈)이 존재의 바탕입니다.
The Ground of Being is Spirit.
해탈(解脫)은 영어로 ‘liberation’입니다.
노예가 자유롭게 풀려난다는 느낌입니다.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게 해방/해탈일까요?자기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탐욕스럽고 화내며어리석은 에고(ego)로부터 풀려나는 겁니다.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에서 벗어나본래 영원히 자유로운 ‘참나’의 존재를 아는 순간을해탈이라 이릅니다. 그 ‘참나’가 바로 성령 자리임을확철대오하는 순간 ‘어이 없는’ 실소가 터져나옵니다.
일찌기 선사(禪師)들은 외쳤습니다,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도 어이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뻔한 걸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니.
늘 그렇게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그 뻔한 걸 놓치다니!바로 내 코 앞에서, 바로 내 등잔 밑에서 그렇게 활활타오르고 있는 불빛을 모르고 있었다니! 황망할 정도로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음을 확연히 깨닫는 겁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 바로 그 경지를 터득한 겁니다.
--------------------------------------------
On the day of liberation you will laugh,but what is on the day of laughter is now.
해탈(解脫)의 그날그대는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웃음의 그날 있는 게바로 지금(至今) 있다.
--------------------------------------------
침묵의 성자 라마나 마하르쉬의 말씀입니다.
해탈의 경지를 깊은 진동으로 깨달은 성자들이 한결같이전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등에 업은 아이를 여기저기 바쁘게 찾아 다니는 우리 모두에게 간곡히 전하는 지혜의편린입니다. 그런데, 결국 한참 다니고 난 후에야 비로소이 말에 공감하게 된다는 체험의 원리에는 동서고금을막론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듯다닌 만큼 또 여물게 됩니다.
또 다른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는일찌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격신(人格神)을 따르던인격을 떠난 참진리를 구하든, 그대는 결국 하나의 실체를깨닫게 된다, 그대가 다만 열정적으로 그걸 추구한다면."Whether you follow the idea of a personal God orthe impersonal Truth, you will certainly realize theOne Reality, provided that you experience passionatelonging for it."
바로 가든 모로 가든 한양만 가면 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든가요? All roads lead to Rome!결국 도달하게 되어 있답니다, 오직 한 마음으로 매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리던, 무(無)자 화두에 매달리던’오로지 한 마음’으로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깨나매달리면 결국 궁즉통(窮則通)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리는가 하는 겁니다. ‘아니면 말고’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
On the day of liberation you will laugh,but what is on the day of laughter is now.
해탈(解脫)의 그날그대는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웃음의 그날 있는 게바로 지금(至今) 있다.
--------------------------------------------
’지금(至今)’이란 말은 명사이자 동사입니다.
지금은 물론 지금입니다. 당장 지금이죠. 그런데, ‘지금(至今)’은 ‘지금에 다다른다’는 동사적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늘 ‘지금 여기’[Here & Now]에 이른다는 거죠. 지금을 지금이라 생각하는 순간 그건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진 후입니다. 지금이 언제 오나하고 기다리는 것 또한 지금이 아닙니다. 그렇게, 지금은 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입니다. 지극히 역동적이요 생생하게 살아 펄떡이는 말이 바로 ‘지금(至今)’인 것입니다.
오매불망 지극정성으로 늘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참진리를 구하는 사람에게 해탈의 그날은 확실하게점지되어 있답니다. 웃음의 그날이 분명히 약속되어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날’은 언제든 ‘지금’이 될 수 있다는 게 바로 복음(福音)의 핵심입니다.
미스틱 비전[The Mystic Vision]을 다발로 전하는 편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Each one of us will know the flowering of consciousness as it returns to the Source or Ground of Being." 사람의 의식이 본래 왔던 곳, 즉 ‘존재의 바탕’으로 되돌아감에 우리 모두는 결국 의식의 개화(開花)를 알아채게 된다.
이런 말씀이 분명한 진실로 다가오는 날, 우린 결국 웃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은 ‘지금(至今)’처럼 늘 여기에 다다르는 중입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