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3개의 중요한 오페라 공연이 LA에서 잇달아 개막됐다. 17일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이‘피가로의 결혼’을 디즈니 콘서트홀 무대에 올렸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이끄는 LA 오페라는 17일 신작‘둘세 로사’를 샌타모니카의 브로드 스테이지에서, 18일‘토스카’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개막했다. LA에서는 매우 드물게 대작 오페라가 쏟아진 주말이었는데 세 작품은 6월 초까지 각기 2~5회 더 공연된다. 개인적으론 16일 리처드 용재 오닐이 출연한‘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지퍼홀 콘서트로부터 시작해 17일‘둘세 로사’, 18일‘토스카’, 19일‘피가로의 결혼’까지 나흘 연속해서 공연장을 찾았던 생애 기록으로 남을 만한 주말이었다. 감상 느낌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정숙희 기자>
도밍고 농익은 지휘·긴장감 넘치는 연출·소프라노 열창 “최고”
#토스카
LA 오페라의 2012~13시즌 마지막 공연으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고 극찬하고 싶은 작품이다.
첫째 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2시간반 내내 숨 쉴 틈도 없이 긴장 가득한 연출로 엮어낸 프로덕션이 훌륭했고, 둘째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오케스트라가 푸치니의 풍요롭고 서정적인 음악을 아름답게 살려냈으며, 셋째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Sondra Radvanovsky)가 불같이 뜨겁고 격정적인 토스카를 굵고 깊은 드라마티코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열창해 오랜만에 디바다운 디바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아리아는 연주장 전체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첫 음절부터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노래해 끝없는 환호를 받았다. 오페라 공연에서 아리아를 들으면서 머릿속까지 전율을 느끼기는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도밍고의 지휘는 절정에 오른 듯하다. 자신이 무대에서 남자 주역 카바라도시를 수도 없이 노래했던 가수로서 누구보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그는 사실 이전에도 여러 공연에서(할리웃보울에서 LA 필하모닉도 지휘한 적이 있다) 지휘봉을 휘둘렀지만 이번 공연만큼 무르익은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적이 없다. 브라보, 도밍고!이 공연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미제라블’로 토니상을 받은 존 케어드(John Caird)가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를 위해 만든 프로덕션을 가져온 것으로 무대와 세트, 의상, 조명도 모두 극적인 분위기의 공연과 훌륭한 조화를 이뤘고, 화가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마르코 베르티, 경찰 스카르피아 역의 바리톤 라도 아타넬리도 무난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남은 공연일시는 5월30일, 6월5일과 8일 오후 7시30분, 5월26일과 6월2일 오후 2시.
티켓 22~280달러. (213)972-8001www.laopera.comLA
오페라 신작… 뮤지컬 느낌·비디오 프로젝션 이용한 배경 눈길
#둘세 로사
LA 오페라가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을 벗어나 다른 공연장을 찾아가는 ‘오프 그랜드’ 프로그램의 첫 공연인 ‘둘세 로사’ (Dulce Rosa) 는 브로드 스테이지(500석)에 딱 맞는 소품 성격의 작품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지휘로 세계 초연된 이 오페라는 작곡가 리 홀드리지와 대본가 리처드 스팍스가 베스트셀러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단편을 원작으로 만든 신작으로, 이날 초연 한 시간 전에 오페라 해설가 더프 머피와 이사벨 아옌데의 대담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작가 아옌데는 원작소설(‘복수’)은 납치 피해자가 납치범에 동조의식을 느끼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충격을 받아 탄생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 ‘둘세 로사’는 내전 중인 남미 국가를 배경으로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강간당한 여성이 자신을 짓밟은 남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면서도 종국에는 사랑에 빠지는 역설적 감정을 다룬 작품이다.
현대 오페라라고 해서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의 뮤지컬이라 해도 좋을 감미로운 공연이었다. 음악만 듣고 있자면 마치 대하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것처럼 서사적이고 낭만적이었는데 약간의 남미 정서가 들어간 멜로디가 부드러워서 전통 오페라가 무겁다고 느끼는 음악팬들에겐 아주 좋은 공연이 될 듯하다.
로사 역의 소프라노 마리아 안투네즈(Maria Antunez)가 좋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고, 무법자 타데오 역의 바리톤 알프레도 다자, 아버지 역의 테너 그렉 페덜리도 호연했다. 무대를 단순하게 설치하고 모든 배경을 거대하고 화려한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대체한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마지막 공연은 그랜트 거숀(LA 매스터코랄 음악감독)이 지휘한다. 영어대사에 자막. 남은 공연일시는 5월25, 28일, 6월3, 6일 오후 7시30분, 6월9일 오후 4시공연장 The Broad Stage 1310 11th St. Santa Monica, CA 90401티켓 20~150달러. (310)434-3200www.thebroadstage.com
LA필 음악·알라이아 의상 좋았지만 무대구성·연출은 기대 못 미쳐
#피가로의 결혼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지난해의 공연(‘돈 조반니’)이 너무 강렬하게 매혹적이어서 일까.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의 야심 프로젝트 ‘모차르트/다폰테 3부작’(Mozart/Da Ponte Trilogy)의 두 번째 작품인 ‘피가로의 결혼’ (Marriage of Figaro)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이 솔직한 평이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세트를,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가 의상을, 크리스토퍼 알덴이 연출을 맡아 초미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이 공연에 대해 LA타임스는 “프랑스적인 ‘피가로의 결혼’이 창조됐다”고 호평했지만 코믹 오페라의 묘미를 충분히 즐기기는 힘든 프로덕션이었다.
오페라 공연장이 아닌 디즈니 홀을 거대한 공간으로 변형시킨 재주는 놀라웠지만, 오히려 넓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치 못한 느낌이 들었다. 워낙 플롯이 복잡한 작품인데 등장인물들의 동선이 혼란스러워서 장면마다 스토리를 잘 알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들게 연출됐다. 또한 하양, 노랑, 핑크가 연상되는 밝고 경쾌한 오페라를 어두운 핏빛으로 묘사한 점이 의외였다.
의상과 음악은 너무 좋았다. ‘피가로의 결혼’은 수많은 등장인물이 모두 주요 배역인 것이 특징인데 각자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클래식 모더니즘 디자인의 의상들이 볼거리였고, 모차르트의 음악, 그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을 두다멜과 LA필은 놀랍도록 섬세하고 정교하게 연주했다. 음악 연주만으로도 이 공연은 충분히 좋았다.
알마비바 백작부인 역의 도로시아 뢰슈만이 가장 인상적인 공연을 펼쳤고, 백작 역의 크리스토퍼 멀트맨, 피가로 역의 에드윈 크로슬리-머서, 케루비노 역의 레이첼 프렌켈 등도 호연을 보였으나 수잔나 역의 말린 크리스텐손이 눈에 띄게 약하다.
남은 공연일시는 23일과 25일 오후 7시30분. 티켓은 매진됐다.
LAPhil.com, (323)850-2000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