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브라함 링컨은 1864년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재선됐다. 이듬해 3월 링컨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취임식을 마치고 백악관에서 축하연을 가졌다. 연회벽두에 군 밴드가 ‘딕시’(Dixie)를 연주했다. ‘딕시’는 남부 연합국가에 가담한 남부 주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남북전쟁 중 남부군이 행군 할 때 즐겨 불렀던 군가의 일종이었다. 1861년 2월 18일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열린 남부연합국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의 취임식에 이 곡이 연주되면서 남부연합국 국가로도 불려졌었다. 참석자들은 이 음악이 흘러나오자 당황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북부군이 행군 할 때 즐겨 불렀던 ‘공화국의 전투가’ (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가 연주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백악관 연회에서 ‘딕시’가 연주된 것은 링컨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남부와 화해하고 포용하려는 배려의 마음에서 나온 조치였다.
‘전투가’는 미국 어머니날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줄리아 와드(Julia Ward)여사가 1863년 북부군을 위문하러 갔다가 지은 노래로 남북전쟁 당시 여러 국가기념식에서 거의 국가처럼 불릴 만큼 잘 알려졌었다. 지금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는 애창하는 ‘국가사랑의 노래’이며 대부분의 미국교회들은 이 노래를 이날 찬송가로 부른다. 한국 찬송가 38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가 바로 이 노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영령들께서 남긴 뜻을 받들어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희생과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며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지역을 넘어, 아픔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발전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지역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에서 같은 줄에 선 사람들과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었으나 노래는 따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박대통령이 잘 몰라서 부르지 않았는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부르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좀 아쉬운 감을 남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부터 운동권에서 불러 온 노래로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5·18 기념식 공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빠지게 되었고, 2011년부터 제창 대신 합창단 합창으로 대체됐다.
더구나 보훈처가 올해 5·18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다른 공식 기념곡을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하여 5·18 단체와 유족 등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5·1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것은 33년 전 일어난 비극적 사태를 거울삼아 극복하고 화해와 대통합의 선진 민주국가를 향해 나아가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기념하는 국가 주관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것인지 말 것인지가 어떻게 해서 그리 중요한가? 그동안 좌파 정당과 단체들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애국가는 부르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만 불러 생각 있는 국민들 사이에 많은 오해를 불러왔다. 그러나 그동안 5·18 기념식에선 이 노래 제창이 사실상 관례로 굳어져 왔다.
그러므로 이 관례를 이번 행사에서도 적용했었으면 더 의미 있는 행사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기념식에서도 국민의례에 애국가 제창 순서가 들어 있어 모두 함께 불렀으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더 돋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지역을 넘어, 아픔을 넘어’를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근대한국의 지역주의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됐다. 아버지의 과오를 씻고 화합과 배려로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주역주민들이 안고 있는 아픔부터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내년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순서로 정하고 같이 불렀으면 한다. 링컨대통령이 ‘딕시’를 연주하게 한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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