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기 워싱턴스퀘어 서쪽의 맥두걸(MacDougal) 스트릿 137번지, 밴더빌트 홀 반대편에는 ‘폴리스(The Polly’s)‘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20세기 초 이곳의 2층은 ‘새로운 사상에 관심을 둔 이들의 모임’을 기치로 설립된 리버럴 클럽의 성지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산아제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매일 같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 때 참여한 이들의 면면만 봐도 화려하다. 싱클레어 루이스, 시오도어 드라이서, 프로이드 델 등 미국 신문학의 기수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폴리스는 폐업해, 뉴욕대 로스쿨의 법률연구센터 윌프 홀로 이용 중.
이와 함께 인근 맥두걸 스트릿 139번지에는 1916년 프로빈스타운 극장이 설립되었다. 전해 매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에서 조직된 극단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즈’가 유진 오닐의 처녀작 ‘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Bound East for Cardiff)’를 상연해 대성공을 거둔 뒤 뉴욕으로 거점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1920년에는 오닐의 대표작 ‘황제 존스(The Emperor Jones)’를 공개해 대호평을 이끌었다.
비록 대중적인 성공으로 전위성은 거의 상실했지만, 이것은 미 연극계의 근대성 탈피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오닐은 1936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참고로 현재도 그 명패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 역시, 뉴욕대 뮤직·퍼포먼스아트 과정의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1차 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 들며 빌리지는 급속도로 변모한다. 지하철과 버스가 들어오며 한적하던 일대가 주택지로서 각광을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대규모 공사가 이어지고 렌트비가 오르자 가난한 예술가들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이 금주법 시대(1919-1933년)에 접어들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바로 이곳에 대규모 밀주장이 들어선 것이다. 특히 몰래 술을 주문하는 스피퀴지스가 인기를 끌며 사람들을 대거 불러들인다.
이로써 다시금 생활환경이 악화되자 이번에는 거주자들의 대규모 이탈이 일어났다. 동쪽의 보워리 지역처럼 거주지에서 대규모 예술 집적지로 변모한 것이다. 당시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가 ‘새로운 미국 아티스트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1918년에 세운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은 이때의 예술 진흥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빌리지 내 8번가의 조그만 건물에 세운 이 클럽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대거 발굴해 전후 아메리칸 아트를 크게 발전시켰다. 이것이 1931년 휘트니 미술관으로 변모해 현재에 이른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선배들의 혁신성을 뒤따른’ 젊은 아티스트들도 대거 몰려들었다. 이른바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동시대 사회와 문화 구조에 저항한 예술 그룹)’의 시인, 작가들이다. 미국 현대사회에 대한 격정적 애가로 불리는 ‘울부짖음(Howl)’의 알렌 긴즈버그, 기성 윤리관을 벗어나 감각적인 자기만족을 추구한 ‘노상(On the Road)’의 잭 케루악 등이 이주해 온 것을 비롯해, 오프브로드웨이라 불리는 전위적 극장도 블리커(Bleecker) 스트릿 일대에 잇따라 문을 열었다. 아울러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이 연주하던 Cafe Wha, 창립 85주년이 넘은 카페 레지오 등도 맥두걸-블리커 스트릿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카푸치노 붐을 일으킨 ‘카페 레지오’3대째 영업 중
펑키한 분위기 가득한 맥두걸 스트릿을 거닐다 익숙지 않은 광경에 눈길이 멈춘다.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노인의 편안함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여유. 와일드한 컬처가 뿌리 깊은 이 일대에서도 유난히 소프트한 감성이 두드러진다. 빈티지 느낌 가득한 ‘카페 레지오(Caffe Reggio)’ 이야기다.
당초 여관을 운영하던 초대 사장 도미니크 파리시가 ‘커피 애호가들의 아지트를 만들고자’ 1927년 직접 사비를 털어 이 카페를 오픈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카푸치노(4.50달러)를 소개하며 ‘카푸치노 붐’을 일으킨 유행의 거점이다. 1960-70년대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같은 뮤지션들이 단골처럼 들른 이곳은, 현재 3대째 오너가 가게를 운영 중이다.
이전 ‘대부 2’나 ‘형사 서피코(Serpico)’ 같은 영화에도 등장했던 이 카페는, 1902년에 제작된 에스프레소 머신을 아직도 사용하고 카라바지오의 오리지널 회화가 걸린 실내가 그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주소 : 119 MacDougal Street / 문의 : 212-475-9557
오픈 : 월-목 08:00-03:00, 금-토 08:00-04:30, 일 09:00-03:00
<이수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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