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미국사회의 원리원칙주의에 관해 말씀 드렸다.
미국사회 전반에 걸쳐, 미국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질서, 원리원칙의 준수가 처음 미국땅을 밟는 한국 이민자들에게 신선한감동으로 다가왔다는 이야기,그리고 질서가 무시되는, 질서를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지키는 이러한원리원칙의 준수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는 이야기를 드렸다. 그런데, 이러한 철저한 원리원칙의 준수가 항상 좋은 것이고 일의 처리에 항상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바로 예스라는 대답이 안나온다. 다른 말로하자면, 지나친 원리원칙에 치우치다가 원활한업무 처리가 가능하지 않기도 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원칙을 내세우다가 지체되는일도 잦게 된다. 즉 업무처리의 융통성이 부족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가까운 예를 하나 들자. LA에서 New York으로 업무출장을 가는 A씨가 항공권을 크레딧 카드로 계산하고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했다. 아시는 것처럼 몇 해전부터는 전자항공권으로 발급이 되어서 컴퓨터로만 입력이 되고 종이항공권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카운터에서운전면허증 혹은 여권 등 ID 와 크레딧 카드만주면 바로 항공좌석을 배정하여 티켓을 발급하니까, 가지고 있던 운전면허증과 크레딧 카드를주었는데, 그 운전면허증이 최근에 다시 발급받은 면허증이 아니고 예전에 가지고 다니던, 기간이 만료된 운전면허증이 아닌가. 실수로 예전면허증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그래도 왠간하면 그냥 통과되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담당직원이 유효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새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와야 한단다. 지금 곧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인데, 사람이 바뀐 것도아니고 사진도 본인 사진인데 본인확인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단지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안된다는 것은 너무하다, 지금 시간이넉넉하면 집에 가서 다시 새것을 가지고 오겠지만, 곧 비행기가 날라간다, 저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큰일난다, 한번 봐 주라 등등. 그러나 담당직원은 항공권 발급 규정에는 반드시 유효기간내에 있는 유효한 ID 만이 본인 확인에 가능하기 땜에 어쩔 수 없다, 빨리 서둘러서 다른 유효한 ID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좌석권을 발급할 수 없다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어쩔 수 없이 A씨는 그 비행기는 놓쳐버리고 다시 집에 가서새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와서다음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충분히 직무에 충실한공항 직원의 이야기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공항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이해되고, 여러 이름을 동시에 쓰는 많은 미국사람들이 있음도 이해하고, 수시로 체류자격이 바뀌는 미국사회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너무 지나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만능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유효기간이 지나간 ID와 기타 다른 서류, 여타의 크레딧카드 등등으로 본인확인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하여 고객에 대한 보다 나은서비스와 업무의 능률을 위한다는 차원에서는약간의 융통성이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원칙은 최대한 지키되,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필자도 원리원칙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그것을지켜야 한다고 수시로 주위에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매사에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고 룰과 규칙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지키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며, 원칙이 없다면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오다 보니, 이러한 원칙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 여태까지 대충대충 어렵지 않게 살아온 사람들,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둥글둥글하게살아온 사람들, 원칙과 규칙이 오히려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필자가 그리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지 않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필자는 깐깐한 사람, 지나치게 원칙을 따지는 사람, 자기 손해는 절대 안 볼려고 하는 사람 등으로 뒤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리라. 수지청즉무어(水至淸?,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원칙을 준수하는 것을 바꾸지는 말되,나 본인 자신에게는 엄격한 규칙의 준수를 스스로 요구하는 한편, 친구나 타인에게는 보다 부드러운 융통성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더 좋은 대인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들어 많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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