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겐 최악의 시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의 나흘, 백악관은 숨 쉴 틈도 없이 계속된 집중포화에 무방비상태로 휘청거렸다. 한 개도, 두 개도 아닌 세 개의 대형 스캔들이 연달아 터져 나온 것이다.
시작은 금요일(10일) 새벽 ABC 뉴스의 벵가지 관련 보도였다. 지난해 미국인 4명이 숨진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피습사건의 중앙정보국(CIA) 보고서가 국무부의 압력을 받아 테러가능성 삭제 등 10여차례 수정되었다는 내용이 행정부와 의회 간 비공개 이메일에서 드러났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때까지 극우보수의 ‘오바마와 힐러리 죽이기’ 정도로 치부되던 벵가지 조사가 정부의 보고서 조작과 진실 은폐 의혹의 ‘스캔들’로 비화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폭탄이 터진 것은 벵가지 보도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아 워싱턴이 와글와글하던 같은 금요일이었다. 국세청(IRS)이 2010년 앤티오바마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티파티를 비롯한 보수단체에 대해 표적 세무조사를 실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실무진의 비리를 처음엔 몰랐다고 발뺌하던 국세청 고위층이 감사보고서가 공개되자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 것이다.
백악관의 침묵 속에 벵가지와 IRS로 소란스런 주말을 보내고 새 주가 시작된 월요일, 세 번째 스캔들인 ‘언론자유 침해사건’이 불거졌다. 연방법무부가 지난해 AP통신의 2개월분 통화기록을 비밀리에 압수 조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무실만이 아니고 기자들의 집 전화와 셀폰 기록까지 샅샅이 뒤진 조사로 취재원이 정부의 감시망에 노출된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언론 침해”에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미디어들이 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법무부는 AP의 지난해 테러실패 보도와 관련해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작전기밀 유출” 경위 수사 때문에 불가피했다면서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범죄자도 아닌 언론사에 대해 사전협의도 없이 비밀조사를 벌이는 것은 “정당화되기 힘든 과잉 개입” “도를 넘은 정부의 월권”이라고 미디어들은 거세게 비판했다.
IRS와 AP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오바마의 첫 반응은 “몰랐다”였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는 마치 바의 손님처럼 뉴스보도를 보고 알았다면서” 거리두기에 급급했다고 꼬집었지만 공화당도 표적 세무조사이건, 언론사 통화기록 조사이건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터진 이상 모든 것은 ‘오바마의 스캔들’이다. 오바마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초연하게’ 비껴갈 방도가 지금으로선 없다. 게다가 이번 스캔들은 본질상 ‘악성’에 속한다. 세 가지 스캔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부의 권력남용’ - 진보의 기본신념과도, 오바마가 공약한 “투명한 정부” “민권자유의 기수”와도 정반대로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더욱 오바마는 사면초가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기성세력과 미디어들도 모두 오바마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5년 동안 별러온 끝에 ‘오바마 공격’의 확실한 여건을 확보한 공화당이 표정관리에 애쓸 만큼 기세등등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민주당과 미디어의 실망과 분노다. 어제 언론침해를 다룬 하원법사위 청문회에선 공화당 의원들 못지않게 민주당 의원들이 에릭 홀더 법무장관을 거세게 다그쳤고 온라인과 전파미디어에선 진보미디어와 극우 티파티가 공동의 적을 향해 아군이 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하원에서 전체 분과위원회 중 3분의 l에 해당되는 6개 위원회가 스캔들 관련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했고 공화당 주지사들은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백악관에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촉구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발생하는 통에 시너지효과 마저 보이는 3개의 스캔들 관련 위법 여부는 의회와 행정부의 조사를 통해 정확한 전모가 밝혀지면서 규명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번 스캔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2014년 중간선거를 2010년의 재판으로 만드는데 일조할 것인지, 이른바 ‘집권2기의 저주’로 들어가는 문턱이 될 지…아직은 속단하기 힘들다.
모든 스캔들에 여론의 시각이 같은 것은 아니니 공화당도 스캔들 공격과 주요 어젠다 입법을 안배하며 수위 조절에 고심하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신중한 전략이 필요한 것은 오바마와 백악관이다.
갖가지 스캔들로 얼룩졌던 빌 클린턴 대통령 행정부에서 위기관리를 전담했던 참모로 ‘재난의 달인’이라는 책까지 저술했던 크리스 르헤인은 스캔들을 흥분한 개에 비교한다. 일단 풀어놓은 개는 짖고, 물고, 소동을 일으키게 마련이며 진정시키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인내심을 갖고 진정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그가 강조하는 대응 원칙은 두 가지다 : 신속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또 다른 빌미를 줄 ‘꼼수’는 절대 금물, 숨기지 않는 전면 공개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IRS 스캔들 발생 사흘이 지나서야 “사실이라면 분노할만한 일”이라는 늑장 소극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던 오바마는 어제 현 책임자인 국세청장 직무대행을 해임하고 의회조사에 적극협조를 천명하는 등 강력대처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번 스캔들 대처는 대통령의 위기관리 리더십에 대한 궁극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오바마가 위기를 기회삼아 ‘역사적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래서 ‘2기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까…오바마 성적표는 이번 여름 워싱턴 정가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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