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 할 때 영어로 해야 합니까 아니면 한국어로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합당한 대답은 어떤 것일까? 대답은 2가지로 갈라질 수 있다. 청중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더구나 영어는 더 이상 미국어가 아니고 국제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국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또는 자국의 독립성과 국가위신을 생각해서 한국어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어느 편이 되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연설하는 대통령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영어연설의 비평을 이념과 정치노선의 바탕에서 한다면 더욱 옳지 않다고 본다.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연설이 끝나자마자 민주당 정모 의원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영어 실력은 싸이가 한 수 위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영어로 연설하고 싸이는 한국말로 노래한다. 누가 더 자랑스러운가?” 이 글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싸이는 영어를 잘하는데도 한국말로 노래하여 국위를 지켰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영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영어로 연설을 하여 국가체면을 망가뜨렸다는 얘기로 들린다. 과연 싸이는 한국어로만 노래를 불렀을까? 그렇지 않다. 영어로도 불렀다. 그러면 박대통령만 미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했을까? 그렇지 않다.
미 의회에서 연설한 한국 대통령은 모두 6명이다. 이 가운데 이승만 노태우 김대중 등 3명의 대통령은 영어로 했으며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어로 했다. 정 의원은 자신과 이념과 정치노선이 같다고 생각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연설은 몰라서인지 아니면 알아도 모르는 척 해서 그런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이다. 만일 정 의원이 김 대통령의 경우를 알았다면 박 대통령 연설에 대한 비평은 드러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는 겪이다.
나는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TV중계를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박 대통령은 정확한 문장들을 정확한 미국 발음으로 침착하고 차분하게 이어나갔다. 연설 시작부터 퇴장할 때까지 총 39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가운데 4번의 기립박수가 있었다.
처음 박수는 박 대통령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 딸들과 미국에 경의를 표한다"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문을 언급한 뒤였다. 이후 회의장에 참석한 한국전 참전용사 4명의 의원들 이름을 한 명씩 언급할 때마다 박수가 나왔고, 또 이들을 모두 언급한 뒤에는 의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쳤다.
또 박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며 “이제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등의 언급이 있을 때 역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도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 2년여 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익힌 것으로 알려진 김 대통령은 써 온 원고를 차분히 읽어나갔다. 가끔 알아듣기 힘든 영어발음도 있었으나 전체 문장을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많은 참석의원들은 김 대통령의 연설내용과 원고를 대조해가면서 경청을 했다. 나는 김대통령이 영어로 조금도 거침없이 단호하게 연설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정규 영어교육을 충분히 받지도 않고 나이도 많은 것을 참작하면 ‘너무 멋진 대통령’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 미국 ABC ‘나잇 라인’의 테드 카플과 위성 인터뷰를 했으며 미 방문중에 미국 내셔날 프레스 클럽에서도 영어로 연설을 한 바 있다. 김 대통령은 이번에 박 대통령이 보여준 것처럼 미국 대통령과 공식석상이 아닌 사석에서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영어는 영국어나 미국어가 아니다. 지구촌 어디를 가나 의사소통은 영어로 한다. ‘반미적인 생각’이 있다고 해서 영어를 배척 할 이유는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평양과기대에서 북한대학생들이 영어로 강의를 듣고 말하는 모습에 대해 정모 의원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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