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에는 이미 노르웨지안 뱃지를 가슴에 단 안내원이 나와서 우리를 영접했다. 남편이 이메일로 우리가 아테네에서 배를 타겠다는 것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배를 놓치고 사흘만에 배를 만난 사실이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전해져서 그후 남편은 어디를 가나 "당신이 여자 다섯을 거느리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냐?”고 묻는 일이 많아졌다고 웃는다. 여자들 다섯이 아니라 드레곤 레이디 다섯명이라고 남편은 응수해 줬다고 또 한번 우스게 소리를 한다.
배에 올라타자마자 우리들은 짐만 방에 내려놓고 십이층에 있는 식당으로 몰려갔다. 그동안 잘 먹지 못한 우리들 눈에 부페식으로 차려진 온갖 음식은 눈을 현혹했다. 크루즈를 타고 다니는 기쁨 중의 하나가 온갖 음식을 매일처럼 포식을 할 수 있다는데 있다. 아침과 낮에는 부페식으로 차려지지만 저녁에는 근사한 식당에 가서 웨이터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귀부인처럼 우아하게 고급 식사를 할 수 있다.
다음날은 터어키의 에베소서에 도착했다. 에베소서는 성경에도 나오는 오래된 도시여서 우선 택시를 타고 에베소서 성전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살았던 버어진 메리라는 곳을 둘러 보았다. 성경에서 늘 읽었고 말로만 듣던 바울이 사역을 하던 이곳에 오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때도 예수님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색찬란한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경배했고, 수천년이 지난 오늘도 하루 수백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니 실로 종교의 힘은 위대했다.
버어진 메리라는 마리아가 살았던 곳은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실제로 예배를 보는 사람들 때문에 그 성전을 관람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관광객의 인파에 휩쓸려 다니느라 내눈에는 숲과 오래된 나무와 고작 성벽처럼 둘러쌓인 돌담만 보였다.
배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저녁에는 엔젤이라는 서커스 비슷한 쇼를 관람했는데 그 수준이 놀라웠다. 남녀 둘이서 하는 공중쇼는 너무 완벽해서 마치 두 몸이 하나로 합쳐지는것 같았다. 쇼를 끝나고 나서 감미로운 피아노 음악을 들었다. 우리가 다 아는 닥터 지바고며 러브 스토리며 쇼팡의 녹턴 같은 세미 클라식 같은 음악을 들으며 달콤한 세계로 빠져 들기도 했다.
다음날은 배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러 다니다가 제일 꼭대기 14층에 있는 조그맣고 아늑한 체풀도 발견하고 우리 몇이서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바다를 마주보는 곳에 있는 체풀을 보며 가장 호사스런 크루스에도 이런 예배실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과 함께 과연 몇명이나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디를 가든 이 세상의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늘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다음날은 터어키의 수도이며 인구 천오백만이 거주한다는 고색 창연한 신비의 도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나누어져 있어 유명하고, 사방을 둘러보면 둥근 아치형의 푸른색 모스크가 여지저기 눈에 띤다. 불루 모스크라고 한번에 칠천명 이상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굉장한 규모의 이슬람 성전에 들어가 보았는데 누구나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스카프를 써야 해서 나도 할 수 없이 잠깐 빌린 푸른색 스카프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광장에서 유로를 내고 화장실을 빌려 썼는데 문제는 내가 그곳 화폐를 잘 몰라서 나중에 보니 미국 돈으로 삼불도 더 넘는 돈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혀 우스개 소리로, 내 일생 중 가장 비싼 볼 일을 터어키에서 보았다고 일행에게 말해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배를 타고 이틀 동안 항해를 하고 마지막 기착지인 나폴리에 도착해서 폼페이를 관광했다. 폼페이는 BC 육칠세기에 지어진 도시가 땅 속에 거의 이천년 가깝게 묻혀 있다가 1599년에 발견 되어서 발굴은 1748년에 시작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이 광활한 도시에서 일만명 이상이 살았는데 하루 아침에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땅 속에 묻혔고, 산사람들이 산채로 매장이 된 셈이다. 이제는 화석으로 변한, 한때는 살았던 사람들이 죽을 때의 모양 그대로를 유지하고 서 있는 사람, 엎드려 있는 사람, 임신한 여자들도 지금의 첨단 과학으로 죽을 당시 무엇을 먹었으며 그들의 나이등을 구별한다니 경외스러웠다.
한때는 이 도시에 육십개 이상의 베이커리가 있었다는데 지금도 그 커다란 아궁이에선 곧 피자를 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에서 물줄기를 끌어다 썼던 그 당시 수도 모양이며 집 앞 길가에 새겨진 문패의 이름과 또 부잣집은 굉장히 큰 거실벽에 손으로 그린 그림들이 아직도 선명했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도시가 이제 겨우 삼분의 일만 발굴이 되었다니 앞으로 더 발굴이 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폼페이는 정말 현대판 불가사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 허물어진 담장 벽 한쪽에 정원이 있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나는 아름답게 피어난 노란 장미꽃을 발견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천년의 시간 속에 꽃은 무심하게 피어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았다.
여행의 마지막은 로마에서 시카고를 경유해 집까지 오는데 거의 하루가 걸렸지만, 아무리 세계를 다 다녀봐도 내 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늘밤은 내 포근한 침대에서 아주 단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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