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이후 무려 다섯 차례 걸친 콜레라.황열병 피해 피난온 이들의 별장지구
빌리지 거주자는 자유롭고 관대하며 비교적 열리마음 갖고 있어
극진적인 사상 추동하는 에너지원 존 리드 같은 새로운 담론 기수 잇달아 배출
소호를 지나 하우스턴 스트릿을 건너자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번화한 지역과 맞닥뜨린다. 미드타운이나 로어 맨하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층 빌딩도 드물고, 길 역시 바둑판 패턴의 정형성에서 벗어난다. 허름한 간판에 다 쓰러져가는 바, 그에 더해 거리를 지나가는 이들의 수수한 옷차림을 접하며 이곳이 ‘뉴욕의 멋스러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별천지란 점을 새삼 깨달았다.
옛 영국 식민지 시절 시민들의 별장지구로 불리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다. 커다란 아치가 인상적인 워싱턴스퀘어 서쪽에 자리한 그리니치 빌리지의 역사는 사실 뉴욕의 어두운 질병사와도 관계 깊다. 1799년을 시작으로 무려 다섯 차례에 걸친 콜레라와 황열병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 온 이들의 별장지구란 이미지가 널리 각인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지역 내에는 1805년 시 보건당국이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빌리지는 맨하탄만 해도 이미 여러 곳이 있을 만큼 익숙한 지명이다. 하지만 뉴욕에서 만나는 이들이 그냥 ‘빌리지’라 하면 이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종의 고유명사. 그만큼 그리니치 빌리지는 빌리지적 속성과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흔히 뉴요커들은 미드타운에 거주하는 이들을 ‘체제순응형 인간’이라 부른다. 바둑판 모양으로 잘 짜여진 도로처럼 한 치 오차 없는 비즈니스맨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기존 체제를 수호하며 일종의 기득권과 질서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빌리지 거주자를 연상하면 흔히 ‘Free & Easy & Open Mind’를 갖춘 이들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세간 일반의 시선보다 자유롭고 관대하며, 어떤 문제에 대해 비교적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일종의 찬사다. 물론 그 인식의 바탕에는 오밀조밀하게 자리한 빌리지 특유의 생활환경이 자리한다. 이는 항시 새롭고 급진적이며, 때로는 극단적인 사상까지도 추동하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보헤미안적 사고를 지닌 자유주의자와 급진적 사회주의자, 또 담론과 무정부주의, 허무주의가 뒤섞인 ‘사상적 해방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물로 나타나곤 한다. 보헤미안, 급진적 사상가들의 거점으로 자리하다물론 빌리지에도 일반(?) 시민들이 대거 거주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전위적 아티스트나 과격한 사상가, 혹은 보헤미안 성향의 부랑자까지도 모두 받아들인 풍조가 기반해왔다. 어쩌면 특유의 가난으로 상징되는 결핍된 환경이 이러한 분위기를 양해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5애비뉴가 시작되는 워싱턴스퀘어 북쪽에 자리한 주민들은 배타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 반대쪽, 그러니까 스퀘어 남서쪽 일대의 주민들은 자유로이 이들과의 공생을 모색해왔다. 그것은 곧 수많은 보헤미안과 급진적, 전위적 사상을 가진 이들을 배양해 새로운 담론의 기수들을 잇달아 배출한다. 그 예로 삼을만한 인물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1911년 하버드대를 갓 졸업하고 일대에 거주하며 미국내 좌파 운동을 이끈 존 리드를 가장 먼저 꼽고 싶다. 그는 ‘대중’이라는 좌익 잡지에 기고하는 것은 물론, 미국 공산당의 창설에도 중요한 산파역을 다한다.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아내와 러시아로 건너가 지도자 레닌을 만났다. 이후 불멸의 르포르타주 ‘세계를 뒤흔든 10일간(10 Days that Shook the World)’을 남겼으나 이듬해 러시아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려 노력한 지식인이었지만, 그것은 좌절과 회환을 남긴 보헤미안의 모습 그대로였다.
☆ 빌리지의 공생하는 삶을 그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폐렴에 걸린 젊은 여성 존시가 매일 같이 창밖을 바라본다. 나날이 떨어져 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그 잎이 모두 떨어질 때쯤 자신도 죽으리라 예감한다. 그 때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화가가 마지막 한 잎을 그려 붙여 둔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도 그 한 잎을 바라보며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다.’
오 헨리의 걸작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는 바로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아파트를 무대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작품 속 생과 사의 경계를 앞두고 서로 돕는 사람의 모습은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공생하는 삶에 대한 관조. 바로 그 근간에 빌리지 특유의 관대함과 배려가 자리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수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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