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이민개혁 수정안의 홍수가 앞으로 몇 주간의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연방상원의 포괄적 이민법안에 대한 법사위원회 심의를 겨냥해 제출된 수정안은 무려 300여개에 달한다.
상당수 의원들이 지난 한 주 휴회동안 지역구로 날아가 민심을 살피고 돌아오면서 시작된 연방의회의 이번 주는 첫날부터 분주했다. 특히 이민개혁안을 둘러싼 투쟁준비가 팽팽한 긴장 속에 치밀하게 전개되었다.
월요일부터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이 포문을 열었다. 세금으로 부담해야할 이민개혁 시행경비가 6조3천억 달러나 된다는 경고성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진보뿐 아니라 같은 보수진영에서도 “근거 약한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공화당의 내분이 다시 부각되었지만 2007년 헤리티지는 유사한 보고서로 당시의 개혁안 침몰에 일조한 바 있다. 같은 날 국경통행세 부과 금지안이 법사위에 첫 수정안으로 제출되었고 마감시간인 화요일 오후 5시까지 제출수정안이 수백개로 늘어나면서 의사당 안팎은 각 이해그룹의 로비스트들로 북적댔다.
개혁안 일정은 빡빡하다. 오늘부터 심의에 들어간 수정안의 첫 표결은 내일로 예정되었고 일단은 20일까지 몇 차례에 걸쳐 심의와 표결이 계속될 것이다. 막 올린 연방의회 이민전쟁에서 법사위 수정작업은 8인방이 아슬아슬하게 묶어놓은 포괄적개혁안이 원안의 핵심을 다치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첫 시험대다. 민주당이 장악한 법사위에서 예측이 어렵지 않은 표결의 결과보다 주목할 것은 심의의 분위기다. 본회의 통과여부를 점치는 프리뷰라 할 수 있어서다.
법사위 심의 중 강경보수파 기세의 강도에 따라 본회의에서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의 마음이 반대로 돌아설 수도, 찬성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개혁안의 공동작성자인 8인방은 본회의에서 공화당 중도파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는 60표 찬성이 아니라 최소 70표 찬성이라는 압도적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공화당 주도의 하원에서 “반발을 누르고 통과시키라”고 압박하는 파워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도 첫 시험대는 결코 쉬워만 보이지는 않는다. 3백여개 수정안들이 도열한 전쟁터엔 사방이 함정이고 사방에 독약이 널려있다. 이른바 ‘독약(poison pill)’ 수정안이 상당수다.
‘포이즌 필’은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서 극단적 경영권 방어수단의 하나를 일컫는 ‘독소조항’이라는 경제용어로 의회입법과정에선 무리한 내용으로 원안 자체를 죽이려는 목적의 수정안을 뜻한다. ‘독약 수정안’ 혹은 ‘킬러 수정안’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제출된 수정안은 보수파의 중진 척 그래슬리 의원이 77개, 극우보수의 기수 제프 세션스 의원이 49개, 중도파 오린 해치 의원이 24개 등으로 3분의 2가 공화당에서 나왔다. 국경강화에서 신분 합법화, 취업비자 관련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유전자 샘플 채취와 체납세금 납부완료 증명서를 제출하라는 내용도 있지만 드림법안 대상자를 대폭 확대하고 형제자매초청비자를 유지하자는 수정안도 있다. 아예 합법이민의 숫자도 연 3,000만 명으로 축소제한 하자는 반이민안도 있고 전문직 취업비자를 더 확대하자는 안과 그보다는 단순직 초청 노동자 프로를 늘리자는 제안이 같은 보수진영 안에서도 맞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수정안도 상당수다. 서류미비자가 시민권을 받기 전에는 저임금노동에만 종사토록하자는 억지가 있는가 하면 아예 개혁안의 핵심인 시민권 신청을 막자는 킬러 수정안도 있다. 한국의 소고기파동 때의 원한이 가시지 않았는지 소고기 수입에 대한 제한을 완전 폐지할 때까지 한국인에 대한 투자 비자를 금지하자는 ‘보복성’ 수정안도 제출되었다.
가장 논란이 예상되는 내용은 민주당에서 나왔다. 패트릭 레히 법사위원장이 제출한 동성파트너 수정안이다. 미국시민이 외국인 동성애자 파트너에게도 시민권 스폰서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제안이다. ‘킬러 수정안’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내용이 터무니없어서가 아니라 그 여파가 위태로워서다. 민주당 10명 공화당 8명으로 구성된 법사위에서 민주당이 제출한 수정안의 통과확률은 높지만 만약 동성파트너 수정안이 첨부될 경우 하원은 물론이고 상원 본회의 표결에서도 공화당 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제출된 수정안 모두가 심의와 표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택권은 레히 법사위원장에게 있다. 못마땅해도 국경강화 수정안을 채택하고, 지지하고 싶어도 시민권 취득 기간 단축안을 내쳐야 하는 것이 위원장의 고민이다. 그래야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2007년 상원 본회의에서 초당적 이민개혁안이 60표 지지를 확보 못해 죽어버린 가장 큰 이유는 난무한 수정안이었다. 100여개가 제출되어 48개가 표결에 부쳐져 시간만 질질 끌다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2013년 이민개혁안이 성사되려면 하원까지 대부분 관문을 8월 휴회 전에 통과해야 안전하다. 시간이 촉박하다. 2007년과 같은 장애에 걸리지 않으려는 각오가 단단한 8인방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법안은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민개혁 반대파인 보수 뿐 아니라 지지파인 진보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
법사위엔 8인방 중 공화당과 민주당 각 2명씩 4명이 포함되었다. 첫 시험대에선 이들이 개혁안 사수의 임무를 맡았다. 무리한 수정안을 뽑아내고 합리적 수정안을 첨부시켜 개혁법안을 의회 최종통과에 적합하게 개선 보완하는 임무다. “킬러 수정안 저지”를 목표로 이들이 구축한 연합전선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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