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열흘간 지중해 연안을 따라 크루스 여행을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했을때 딸애는 봉 보야즈라고 말했다. 우리 일행은 남편과 친구들 넷을 합쳐 모두 여섯명이었다. 지난주 화요일 새벽부터 잠을 설쳐가며 우리들은 오랫만에 떠나는 여행으로 모두가 약간씩 흥분 상태였다. 그때는 이 여행이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며칠동안의 악몽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를 거쳐 로마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컴퓨터가 작동이 안돼 다섯 시간이나 지체를 하는 바람에 우리가 시카고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로마행 비행기는 떠나고 없었다. 그때의 그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우리가 그때 최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로마 대신 런던으로 일단 가서 그 다음날 아테네로 가는 것이었다. 아테네는 사흘뒤 배가 그곳에 정박할 예정이어서 그곳에서 배와 합류할 생각이었다.
그날밤은 시카고 어느 교외의 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부터 다시 택시를 타고 시카고 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겨우 두세시간 눈을 붙이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더구나 이미 짐은 우리 손을 떠나 있었기에 옷도 갈아 입지 못하고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때부터 사실상 ‘배를 찾아 삼만리’가 시작된 셈이다. 다행히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제대로 된 식사가 제공이 되어서 우리들은 이틀만에 밥다운 밥을 먹고 겨우 정신을 차릴수가 있었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곳은 밤이었다. 식당들은 거의가 문이 닫힌 상황이어서 겨우 스낵바 같은데서 뻣뻣한 베이글을 씹어가며 또 그날 밤 잘곳을 알아 보아야 했다. 비싼 택시값을 물어가며 도착한 곳은 낡을대로 낡은 모텔이었다. 세계적인 런던이라는 도시에 이런 낡고 초라한 모텔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값도 제일 비싸게 내고 다음날도 새벽에 떠나야 했기에 커피 한잔도 얻어 마시지 못하고 쫄쫄 굶어가며 런던 공항에서 겨우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얻어 탈수 있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이틀 동안 짐은 이미 비행기 안에 있기에 찾지도 못하고 겉옷은 커녕 속옷도 갈아 입지 못해 정말 짜증이 났다. 미국에 살면서 속옷을 사흘동안 갈아 입지 못한 것은 생전의 처음이라고 남편에게 툴툴댔다. 사실 남편이야말로 제일 고생이 심한 사람이었다. 남자 한명에 여자들, 그것도 모두 칠십세 이상인 고령의 여자들을 인솔하면서 데리고 다니자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함께 며칠만 여행을 같이 하면 그 사람들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보통때는 너무 털털하고 덜렁대는 성격의 친구가 오히려 함께 여행하기는 편하다. 아무래도 유사시에 깐깐한 성격보다 이런 사람들이 대충 넘어가고 따지지를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여러가지 역경을 거치고 목적지인 아테네에 함께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이 감사해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테네에 도착했어도 배를 타려면 이틀을 기다려야 했다. 아테네는 생소한 도시라 숙소를 마련하는데도 문제가 생겼다. 마침 비행기 안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프린스톤 대학의 역사학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모계가 그리스인이라 이 항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비싸지도 않고 깨끗한 호텔을 소개 받을수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택시도 검은 머세드 벤츠를 가지고 나온 젊은 청년 운전수가 마침 영어도 제법해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부터 하고 그날 저녁은 근사한 중국집에 가서 제대로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여행을 떠난 후 처음 모두들 긴장을 풀고 푹 쉴 수 있었다. 마침 운전수가 한국 식당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다음날은 관광도 하고 한국식당에 가서 푸짐하게 비빔밥도 먹었다. 도시락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는데 이 먼곳 타국에서도 한국인이 식당을 하고 있다니 이제는 정말 한국인이 살지 않는 도시란 이 지구상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좋은 관광도 배가 고프면 헛 것이다. 아테네는 날씨도 캘리포니아와 비슷하고 도시도 깨끗하고 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보다 도시 중심에 예수님보다 먼저 지어졌다는 이제는 다 허물어져 가는 템풀을 보고 이 나라 후손들은 조상이 지어놓은 다 망가져 가는 기둥들을 팔아가며 살고 있구나! 참 팔자 좋은 사람들이란 생각을 지을수 없었다. 호텔이 있는 좁은 골목길엔 오렌지 꽃이 한창이어서 꽃내음이 거리를 진동케 했다. 어느곳에서도 그스리스의 재정이 밑바닥이 되어 망해가는 나라라고는 볼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아폴로며 제우스 신들을 모셔놓은 아크로팔리스라는 성전의 돌계단을 오르는데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고 발 밑에는 거의가 하얀색 일색인 아테네 시가지가 광활하게 펼쳐졌다. 몇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의 정적 속에서 다시금 인간의 존재가 너무도 미약하게 느껴졌다.
저녁은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갓 잡은 신선한 민어 구이를 먹었는데 머리통이며 꼬리까지 우리 전통의 생선구이와 같아서 친근감까지 느껴졌다. 나이가 지긋한 웨이터는 영어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친절했다. 이곳 그리스인들은 친절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은 다 챙기며 겉으론 웃으면서 바가지를 씌우는 스타일이었다. 그동안 관광비며 택시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항구로 나갔더니 우리가 타는 노르웨지안 제이드가 그 큰 몸짓을 자랑하며 우람하게 우뚝 서있었다.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후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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