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예가·사업가·사진작가 거쳐…“지난 1년 그림만 그려” 고희 넘긴 인생 내공 담긴 100여점 활기차고 생기넘쳐 신문지·철사·화선지 사용한 다양한 조각물도 눈길
조형물‘허수아비’ (왼쪽) 와 이병응씨의 추상작품‘분출’(오른쪽)
스튜디오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이병응씨.
“자연은 생동감으로 가득 차있고 끊임없이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생명력이 나를 감동시키고, 그 감동이 붓끝으로 표현되는 것이 나의 그림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그림으로 그릴 때 나는 더할 수 없는 희열과 열정을 온몸으로 느낀다. 붓을 옮기는 팔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힘이 솟는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이다”작년 이맘 때 사진작품전을 열었던‘리스 파터리’(Lee’s Pottery)의 이병응(74·William Lee) 회장이 이번에는 서양화 개인전을 연다. 5월16일부터 29일까지 파크뷰 갤러리.
도예가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사진작가에서 화가로 완벽하게 변신한 그는“이제야 고향에 돌아왔다”고 말한다. 자신의‘귀향’에 대해 그는 전시회 초대장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반세기 동안 흙을 만지며 도자기를 구워 예술혼을 살려온 오래된 집터 위에 이제 자연이 발산하는 생동감을 아우르는 그림으로 내 예술세계의 집을 짓고자 합니다” 그 집은 벌써 단단한 토대와 뼈대를 갖추고 여기저기 건축이 한창이다.
■ 서양화 개인전 여는 ‘리스 파터리’ 이병응 회장
바로 작년에 사진전을 크게 열었던 이병응 회장이 1년여만에 추상화 전시회를 연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작품과 예술성에는 큰 기대를 안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치고 건네준 CD와 웹사이트(www.williamartlee.com)에서 이미지를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붓을 처음 잡은 은퇴노인의 작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젊고 생기있고 활력 넘치는 작품들이 100점도 넘게 끝도 없이 이어져있었다. 화려한 색채의 유희가 만개한 캔버스에는 우주와 자연의 기가 넘쳐흐르면서 꽃과 나무, 산과 숲, 새 닭 토끼 강아지, 그리고 허수아비 같은 사람들이 걷고 뛰고 춤추고 노는 형상들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남보다 몇배 더 일하고 몇배 더 살아낸 경험만큼 쌓인 것이 많아서일까. 역동적으로 살아온 이 회장의 70여년 인생의 에너지가 모두 예술이 되어 쏟아져 나온 것이 느껴지는 그림, 감춰져있던 예술혼과 창작열이 그의 작품제목처럼 ‘분출’(Emission)돼 나온 작품들이다.
이병응씨는 홍익대 미대 도예과 1기생으로, 졸업하던 1964년 대한민국 국전에 입선하고 상공미전에 특선(국무총리상)했으며 71년 도미 후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도자기 연구원을 지냈던 타고난 예술가였다.
그러나 가난한 가장이었던 그는 예술을 미뤄두고 생업을 택했는데, 사업에도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면서 맨손으로 세운 ‘리스 파터리’가 월마트와 홈디포, 타겟 등 대형 체인스토어에 납품하는 미국 최대의 화분제조 기업으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리고 40년전 미뤄두었던 예술을 그는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평생 그림을 그려왔던 거죠. 도자기를 만들면서 언제나 다른 그림, 다른 디자인을 창조해야 했거든요. 고객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의 눈과 감각을 앞서가며 계속 변화해온 것이 도자기 사업의 성공요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자택 2층의 스튜디오에서 지난 1년 동안 매일 눈 뜨면 그림만 그렸다는 이 회장은 얼마나 그림에 빠졌는지 “손자 왔을 때만 아래층에 내려간다”고 했다.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일이지만 타고난 투지와 건강으로 견디고 있다는 그는 그래도 “그리다보면 창밖에 먼동 터오는 나날이 늘다보니 체중이 많이 줄어 의사로부터 경고를 받았다”며 요즘엔 “아내가 다려주는 홍삼을 먹으며 힘을 비축하고 모든 에너지는 그림을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무려 110점이 넘고 그중 상당수가 대작이라는 그는 매번 마지막 그린 작품이 제일 좋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이제야 나의 내면을 예술로 표현하게 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는 그는 “그림 때문에 오래 살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과 열정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조각도 한다는 사실이다. 신문지와 철사, 색깔 고운 화선지를 사용해 사람 실물 크기의 조형물을 만드는 그는 이 조각품 시리즈를 ‘허수아비’(Scare-crow)라고 명명했다. 인간 자체가 허수아비라는 생각에서다.
“창조주 보기엔 다 허수아비 같을 겁니다. 돈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학식이 많고가 창조주 눈에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모두 허수아비 같은 인생이니까 자만하지 말고 잘난 체하지 말자, 하는 생각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이번 전시회에는 50여점의 회화작품과 함께 조형물도 10점 정도 소개한다니 아주 재미있는 전시가 될 듯하다.
2007년 남가주 홍대 미술대학 동문회에서 ‘자랑스런 홍익인’으로 선정된 이 회장은 모교에서 강의시간에 가장 성공한 동문으로 소개될 정도로 신화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문철 홍대 미대 학장은 축하의 글을 통해 “그의 끝나지 아니하는 자기 발견의 욕망은 놀라운 힘으로 생의 마지막까지 변신되어진다. 보여지는 피사체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는 자기 자신안의 소리와 아우성을 나만의 방법으로 폭파시킨다. 일반인으로서는 그 중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예술적, 사회적 성취를 모두 달성하신 점에서 이병응 선생은 자랑스러운 동문이요 선배이며, 그의 커다란 의지와 실천의 모습은 모교에서도 큰 울림이 되고 있다”고 치하했다.
“모교와 후배들에게 인정받은 것이 가장 기쁘다”는 그는 이번 전시회도 남가주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문회가 주관하고, 남가주서울사대부고 동창회 후원으로 열린다고 자랑했다.
홍대 동문회 상임이사장이며, 사대부고 동문회 회장과 이사장, 장학재단 이사장을 거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회장은 ‘자랑스런 한인교포들’(1997)과 ‘미국을 빛낸 한국인들’(2001) 책자에 수록됐고, 한인 역사박물관 주관 ‘미주이민 100년 기념 한인인명록’(2011)에 선정됐으며, LA 시의회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이 전시회를 즈음해 한국과 미국에서 발행되는 버질 아메리카, 미술세계, 아트 뉴스, 미술신문, 아트코리아 등의 주요 미술잡지들은 이병응 작가의 회화세계를 특집으로 조명하고 있다.
오프닝 리셉션은 16일 오후 6시.
Park View Gallery 2410 W. James M. Wood Blvd. LA, CA 90006문의 (213)210-4177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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