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의 제조 거점이 패션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리틀 이태리의 서쪽, 그러니까 브로드웨이를 축으로 스프링 스트릿에서 북단의 하우스톤 스트릿까지 이르는 일대를 소호(SoHo)라 한다. 그 명칭은 즉 ‘하우스톤 스트리트의 남쪽’(South of Houston Street)이라는 의미로 짧게 소호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Houston이 휴스턴이 아닌 하우스톤으로 발음되는 것일까. 텍사스주의 항공도시 휴스턴처럼 휴스턴으로 발음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피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스턴이 맞다. 하지만 여기서 하우스톤(HOUSE-ton)의 발음은 일종의 뉴욕 사투리로 보면 될 것이다. 뉴욕에서 라커펠러를 흔히 라카펠라로 발음하곤 하는데, 이 역시 뉴욕식 사투리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원래 이 일대는 습지에 가까운 땅으로 알려졌다. 1644년 서인도회사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이곳에 집단으로 거주했으나, 이후 백인들이 하나 둘 들어오며 변모했다. 이로 인해 동쪽의 보워리와 함께 고급주택지가 대거 들어섰지만, 19세기 이후 대대적인 도시 개발에 따라 일상잡화나 생활용품의 제조 거점으로 남게 된다. 이전에 살펴봤듯 동쪽의 보워리는 대개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심의 환락가로 변모했다. 하지만 서쪽의 소호 지구는 소규모 공장과 스튜디오가 자리하는 제조 거점으로 발전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이러한 분위기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패션 산업을 새로이 추동한다. 인근 트라이베카를 통해 들어온 텍스타일로 각종 의류를 생산해온 것이다. 열악한 생산 환경에서 저렴한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밤낮으로 기계를 돌렸다. 이때의 치열함은 현재 소호에 자리한 건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철제 사다리가 지그재그로 건물 밖에 드러나 있으며, 다소 흉물스럽고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일반적으로 이 같은 디자인을 Cast-Iron 건축이라 부르며, 소호는 그 양식의 최대 집적지로 꼽힌다). 특히 1950년대에는 일대를 ‘지옥의 100에이커’라 부를 만큼 상태가 악화되었다. 현재 명품샵들이 즐비하고 고급 브랜드의 생활용품점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을 생각하면 가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SPA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어 몰개성화가 우려되다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한 시기 소호는 새로운 발전상을 그린다. 바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거점이 된 것이다. 공장 시설이나 창고를 스튜디오로 바꿔 쓰며 여러 명이 작은 공간에 모여 공동의 창작 활동에만 열중했다. 게다가 한 때는 퍼포먼스 아트에 천착한 이들까지 대거 모여들어 오프오프브로드웨이의 실험극장이 잇따라 문을 열기도 했다. 이때의 모습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89년작 ‘뉴욕 스토리 3부작(New York Stories)’ 중 ‘인생 수업편’에 잘 그려져 있다.
■ 예술 원천지에서 고급 상점가 변모
현재의 소호는 예술로 살찐 창의성의 거점이라기보다 대규모 샤핑가로 변모한 느낌이 강하다. 이곳에서 비즈니스를 확대하려는 기업들의 자본이 슬금슬금 밀려들어오며 가난한 예술가들은 삶의 터전에서 거의 반강제로 내쫓기게 된다. 이들의 다수는 하우스 스트릿 동쪽, 이스트강 건너에 자리한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지구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고색창연한 건물과 전위적 예술의 원천지가 고급 상점가로 변해버린 괴리감은 실상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물론 각종 부띠끄와 갤러리, 그리고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지만 소호에서 느껴지던 소박한 생의 기운은 거의 사라진 상태.
게다가 현재 소호의 대로변은 ZARA, 유니클로, Top Shop, H&M 등 각종 SPA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도리어 고매한 명품샵들은 지구내 골목골목으로 숨어들었고, 인적이 끊이질 않는 대로변만 ‘저렴하나, 질은 대체로 양호한’ 브랜드의 집적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지역의 몰개성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 ‘차별화 되지 않은 지역의 균질화가 향후 뉴욕의 매력을 지키는데 가장 큰 위협 요소가 될 것’이라는 사회학자들의 경고가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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